-"파탄 난 혼인관계 유지 증오심만 키울 것"vs "유책주의 기본정신 흔들려선 안돼"
[아시아경제 김재연 기자] 바람을 피운 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공개변론이 26일 열렸다.
대법원은 1965년 이후 혼인생활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그러나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 청구를 못 하도록 하는 이른바 '유책주의' 폐지에 대한 여론이 커지자 공개변론을 연 것이다.
이날 변론에 참가한 김수진 변호사는 "파탄 난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당사자 모두에게 고통을 줄 뿐"이라며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오히려 서로 증오만 키울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2년 조사 결과를 인용해 "국민의 55.4%, 전문가의 78.7%가 배우자 보호 조건 아래 파탄주의를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데 찬성했고, 세계 각국의 이혼법도 파탄주의로 변해왔다"며 파탄주의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이혼이 상대방에게 가혹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때는 이를 제한하는 가혹조항을 도입하고, 위자료나 재산분할 등 부양적 요소를 지금보다 더 고려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양소영 이혼전문 변호사는 "부정행위로 혼인을 깨 놓고 관계가 파탄됐으니 해방시켜달라며 권리를 남용하는 것을 법이나 판례로 보호할 수는 없다"며 유책주의의 근간이 되는 이런 정신은 아무리 시대와 가치관이 바뀌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주장했다.
또 "대법원 판례로도 오기나 보복감정 등으로 악의적으로 이혼에 응하지 않을 때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받아들이는 만큼 굳이 더 나아가 파탄주의를 택할 실익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나 재산분할비율, 양육비 수준으로는 잘못이 없는 배우자를 보호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파탄주의를 도입하기에는 아직 현실이 냉정하다고 지적했다.
유책주의가 이혼 과정에서 상대의 잘못을 들춰내며 분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지만, 파탄주의를 도입한다고 해도 진흙탕 싸움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대법원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만큼 50년간 유지돼 온 유책주의 판례가 바뀌는 게 아닌지 관심이 쏠린 상황이다.
한편 앞서 혼외 여성과 아이를 낳고 15년 동안 동거 중이던 A씨는 2011년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지만, 1,2심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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