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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빚과 저축 외줄타기 '채무인간'

시계아이콘01분 40초 소요

[데스크 칼럼]빚과 저축 외줄타기 '채무인간' 이정일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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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떨어졌다는데 그럼 은행(대출) 이자도 줄어드는 게지?"


수화기 너머 부친의 질문이 생경스러웠다. 며칠 전 지방에 거주하는 부친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을 때다. 일흔이 넘은 당신은 그 세대가 그렇듯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이고 셈도 밝지 않다. 돈 생기면 은행에 맡겨 이자 챙기는 것이 재테크의 전부라 여긴다. 빚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요, 투자는 투기의 동의어다.

그런 분이 그날은 달랐다. 금리니 이자니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아마도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뉴스를 접한 모양이었다. 얼마 안 되는 현찰을 은행에 넣어두고 매달 받는 이자를 담뱃값, 약값으로 소비하는 당신에게도 '1%대 초저금리'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 된 것이다. '금리 인하' 대서특필이 소시민의 삶을 흔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 가는 길'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혼란스러운지도 모른다.


처음 가는 길의 의미가 '낯설다'는 뜻만은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에 가깝다. '금리가 떨어지면 이자는 얼마나 줄어드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것은 그래서다. 예컨대 은행 이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은의 기준금리뿐만이 아니다. 변동금리와 밀접한 '코픽스(COFIX)'라는 것도 있다. 정기예금, 정기적금, 주택부금, 양도성예금증서(CD), 금융채 등 주요 시중은행 상품들을 취합한 지수다. 고정금리는 채권금리의 영향권에 있다. 여기에 신용도, 대출기간 등 다양한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통계학에서는 이를 '다변수'라고 하는데 기준금리는 다변수의 하나일 뿐이다. 은행 이자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난해한 설명을 부친은 이해할까. 여전히 저축은 '절대선'이요, 빚은 '절대악'이라고 여길까.


초저금리 시대, 저 강건해보이는 '절대'에 틈새가 벌어졌다. '저축이 절대선은 아닐 수 있다'는 신호다. 지난 3월 기준 금리가 1.75%로 떨어지면서 사상 첫 1%대에 진입한지 3개월만인 이달 1.50%로 추가 하락했다. 은행예금은 들썩인다. 다른 투자처를 찾아 떠났거나 이탈을 준비하고 있다.


'저축이 가정의 안녕과 평안을 보장한다' '은행 이자로 노후를 즐긴다'는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안전'과 '수익' 두 날개로 비행하던 은행 저축의 궤도도 틀어졌다. 그나마 안전이 제 구실을 하지만 수익이라는 날개는 속절없이 꺾였다. 그 자리를 연금, 펀드, 부동산, 주식 등이 비집고 들어온다. 재테크에 세테크까지 금융 소비자들의 셈은 한층 복잡해졌다.


초저금리 시대, 또 다른 틈새는 '빚은 절대악이 아닐 수 있다'는 신호다. 20~30년 전 봉급을 꼬박꼬박 모아 집을 마련했던 월급쟁이의 성공 스토리는 드라마 단골 소재였다. 빚 한 푼 내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는 못 살고 못 먹고 못 입던 고금리 시대의 눈물겨운 살풍경이었다.


오늘날 '내 돈으로만 집을 마련하겠다'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원칙주의자거나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부자이거나. 소시민들이야 은행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적당한 금액을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것은 투자 수익률에 도움이 된다는 지렛대(레버리지) 효과를 철석같이 믿는다.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행동수칙에도 귀가 솔깃하다. "대출금을 집값의 30% 이내, 원리금은 수입의 30% 이내로 하는 30-30클럽을 지켜라. 침체기에는 대출을 줄이고 호황기에는 대출을 늘려라."


초저금리 시대, 저 틈새들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가계부채 1100조'는 언제든 핵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새로운 파도에 몸을 실었다(또는 몸이 실렸다). 그 파도에서 누구는 저축에 보다 가깝고 또 누구는 빚에 조금 더 가깝다. 관건은 균형감이다. 빚과 저축의 경계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채무인간, 호모 데티엔스(Homo Debtiens). 대한민국 초저금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빚'을 관리해야 하는 우리의 숙명이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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