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희한한 일이다.
사람들이 직관과 반대인 데다 고도로 난해한 이론은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훨씬 간단한 인과관계는 믿지 않는다.
'빠르게 날아가는 우주선의 시간은 천천히 간다'는 특수상대성 이론은 그대로 수용하고 의문을 달지 않는다. 반면 이에 비해 지극히 쉬운 원리 중 상당수는 과학자들이 규명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수긍하지 않는다.
'MSG라고 불리는 L-글루탐산나트륨이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불신하는 것이 한 가지 사례다. MSG는 우리 몸에 매우 흔한 물질로 글루타민산 한 분자와 나트륨 한 분자로 이뤄졌다. 단백질은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로 많은 기능을 하는데, 단백질을 구성하는 20가지 아미노산 가운데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글루탐산이다. 나트륨은 미네랄 중에서 우리 몸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성분이다.
천연으로 존재하는 MSG와 만들어낸 MSG는 차이가 전혀 없다. 이는 식품회사의 'MSG 무첨가' 마케팅이 나온 배경이다. 식품회사들은 MSG를 꺼리는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상품에 'MSG가 없다'고 표시하면 좋지만 MSG를 넣지 않아도 식재료에서 MSG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MSG를 넣지 않았다'로 한정해 표시하는 것이다.
'큰빗이끼벌레 괴담'도 과학 불신에서 나왔다. 수생 생물인 큰빗이끼벌레는 수질이 오염됐는지 판단하는 지표생물이 아니며 독성이 없고 환경에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국내외 과학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지표생물이 아니라는 근거는 이 벌레가 주로 유속이 느린 강에서 발견되고 온도가 높고 섭취할 유기물이 많아지면 증식하지만 '깨끗한 물에서도 서식한다'는 사실이다.
온라인생명백과사전(eol.org)에 따르면 이 벌레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부정적인 효과도 내, 수생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중립적이다. 이 벌레가 물속 유기물을 걸러 먹으면 물이 맑아진다. 반면 시간이 지나면 물이 투명해지고 햇볕이 잘 비쳐 녹조류가 더 잘 자라게 된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큰빗이끼벌레가 해롭지 않고 생태독성도 없다는 조사ㆍ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ㆍ연구는 국립환경과학원과 4대강물환경연구소, 유역지방환경청, 학계, 민간연구소 등 분야별 전문기관에서 수행했다.
연구진은 큰빗이끼벌레가 많이 서식하는 금강 세종보 인근과 비슷한 인공 생태계를 그 인근에 조성해 큰빗이끼벌레와 어류를 함께 넣고 6~9일 동안 관찰했다. 그 결과 납자루, 밀어, 송사리 모두 생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어류가 큰빗이끼벌레를 먹는 것도 관찰되는 등 독성 영향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조사ㆍ연구는 "큰빗이끼벌레가 4대강 수중보로 인해 강물이 오염된 결과 번식하게 됐으며 (이 벌레가 증식하는 현상으로 미루어볼 때) 앞으로 수상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환경단체와 언론매체들의 주장에 따라 실태를 확인해보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일부 환경단체와 언론매체는 올해에도 큰빗이끼벌레 괴담을 재생하고 있다. 한국방송공사(KBS)는 지난 9일 뉴스에서 "강이 아닌 늪이나 저수지 같은 고인 물에 주로 사는 큰빗이끼벌레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낙동강에서 발견됐다"며 "4대강 사업에 따른 수질악화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는 "낙동강 수질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환경단체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속도와 시간의 관계를 규명하는 물리학과 달리 인체 건강과 사람이 사는 환경과 관련한 판단에는 '위험에 대응하는 본능인 두려움'이라는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 사람은 확률이 낮은 위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런 대응은 인류가 생존해오는 데 도움이 됐으리라고 추정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과학을 불신하는 행태는 정도가 지나치다. 불신에는 피로와 비용이 따른다.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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