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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당한 처벌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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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당한 처벌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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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동안 영업과 마케팅에 신경 쓰느라 회계는 잘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회계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회계분식으로 처벌받게 된 국내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가 상투적으로 하는 답변이다. 기업 사기와 창의적인 회계분식으로 악명이 높았던 사례는 엔론이다. 당시 CEO였던 제프 스킬링은 자신이 회계부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발뺌하며 아래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럼에도 그는 15억달러의 분식회계와 기업사기 등 총 35개의 혐의로 기소돼 24년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다음으로 AIG 사례를 보자. 2008년 법원으로부터 재무제표 조작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은 AIG의 임원에게 미국 연방 검찰은 최고 230년의 징역형과 500억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이처럼 두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에서 회계부정을 저지르면 엄청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긴다.

200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도 엔론과 규모와 유형에서 유사한 기업 경영진의 부정행위가 발생했다. 해당 기업의 CEO는 징역 3년형,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2007년 국내 굴지의 그룹 회장이 비자금 조성으로 검찰에 출두했으나 봉사명령과 사회복지 기금 마련 등의 조건으로 풀려났다. 죄질에 비해 경미한 처벌이고 사실상 경영진을 면책시켜 준 거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이러한 처벌을 지켜보면서 강력한 회계분식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기업의 경영자가 '회계분식을 저지르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니 하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과연 들까?


미국은 경영진의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이 우리나라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했다. 엔론 사태 이후에는 기업 경영진과 지배구조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강력한 기업규제 정책을 추진했다. 기업 경영진이 회계부정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재무제표에 부정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서명을 사업보고서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사베인-옥슬리법'의 주요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 '주식회사에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기업 경영진의 재무보고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러던 중 금융위원회가 2013년 10월 기업의 회계와 재무보고에 대한 규율을 강화하기 위해 현행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전부 개정한다는 입법예고를 했다. 지금까지 외부감사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기업을 규율해 왔던 구닥다리 회계감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기업을 직접 규율하고 회계와 재무보고에 대한 주된 책임을 기업에게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률 명칭도 '영리법인 등의 회계 및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로 변경하겠다고 했지만 이 법률개정안은 그 이후 아무런 설명도 없이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상장기업을 감사하는 회계사들은 매년 감사시즌만 되면 상장기업의 재무보고 일정 때문에 기한을 못 지킬까 봐 전전긍긍한다. 반면 기업 담당자는 "감사보고서는 때가 되면 나온다"며 무사태평이다. 감사를 맡은 한 회계사는 "감사받은 재무제표를 적시에 공시해 투자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기업의 책임이 아니고 감사인의 책임인 것 같다"며 씁쓸해 한다.


기업이 져야 할 재무보고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부담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 회계분식을 저지른 기업 경영자에게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다면 기업의 경영자는 회계분식을 해서라도 비자금을 조성하려 들 거다. 영국의 귀족 출신 스파이조직을 소재로 한 영화 속에 나오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 the Men)'는 대사를, '정당한 처벌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로 바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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