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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요구하는 나치 피해 배상금의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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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그리스 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이 그리스 점령 이후 피해 입힌 대가로 독일 정부가 치러야 할 배상금 규모를 2787억유로(약 330조원)로 계산해 제시했다.


독일 dpa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디미트리스 마르다스 그리스 재무차관이 6일 저녁(현지시간) 의회에 이처럼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정부가 제시한 수치는 과거 나치 정권이 그리스 중앙은행으로부터 강제 차입했다는 돈의 의무 상환금과 점령 기간 중 약탈 등 피해 배상금을 합쳐 추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스 정부가 구체적인 수치로 배상금을 공식 산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제금융 협상에 매달리고 있는 그리스 좌파 정부는 지난 1월 총선 직후부터 나치 배상금 문제로 독일과 각을 세웠다. 그러나 독일은 1960년 1억1500만마르크를 그리스에 지불했으니 그것으로 배상 문제가 일단락된 것이라고 버텨왔다.

독일의 지그마르 가브리엘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그리스의 배상금 수치 제시에 대해 "어리석은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리스가 나치 배상금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죄 없는 그리스 주민을 학살하고 유대계 그리스인을 '청소'했을 뿐 아니라 경제와 관련해 최악의 범죄까지 저질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로서는 무엇보다 '디스토모 학살'을 잊을 수 없다.


그리스가 요구하는 나치 피해 배상금의 역사적 배경 디스토모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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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6월 10일,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과 신탁소가 있던 델포이 인근 디스토모 마을. 나치 친위대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다. 가옥과 상점들이 불타는 가운데 나치 친위대는 임신부의 배까지 갈랐다. 마을 사제는 참수당했다. 이날 나치 친위대에 희생된 마을 주민은 218명이다.


나치 친위대가 이처럼 끔찍한 학살에 나선 것은 나치 독일군을 공격한 현지 빨치산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뜻이었다. 2003년 독일 연방 법원은 디스토모 학살을 "2차대전 중 저질러진 비열한 전쟁범죄 가운데 하나"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배상 판결은 없었다. 당시 학살에 연루된 친위대 출신 독일인 가운데 처벌 받은 이도 없다.


그리스에는 2차대전 때 이런 비극을 겪은 마을이 숱하다. 당시 유대계 그리스인 6만명 정도가 폴란드 아우슈비츠와 트레블링카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유대계 그리스인의 75% 이상이 희생된 것이다.


나치는 그리스에서 닥치는대로 재화와 식량을 약탈했다. 그리스인 수백만명이 물자 부족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그 결과 3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나치는 그리스 중앙은행으로 난입해 강제로 대규모 '전쟁차관'까지 얻어냈다. 당시 강탈해간 전쟁차관 가운데 지금까지 상환된 것은 한 푼도 없다. 4년 전 경제학자들은 독일 정부가 이를 상환할 경우 600억파운드(약 97조20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2차대전 발발 이후 1년이 지났을 때만 해도 그리스는 유럽의 전화(戰禍)에서 그럭저럭 자유로울 수 있었다. 히틀러가 그리스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더 큰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도화선에 불을 댕기고 말았다. 그는 히틀러에게 자기도 기습작전에 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했다.


이윽고 1940년 10월 무솔리니는 그리스를 침공했다. 이탈리아군의 그리스 침공이 처음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전세에서 밀린 이탈리아군은 곧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1년 3월 무솔리니는 그리스를 재침공했다. 그러나 2차 침공은 이탈리아군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히틀러가 무능한 무솔리니에게 실망한 나머지 개입하고 나선 게 이 즈음이다. 히틀러는 나치 독일군에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한 다음 그리스로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1941년 5월 초순 그리스는 나치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리스를 점령한 나치는 다른 피점령국에서 한 것과 똑 같이 행동했다. 나치 독일 전문가인 영국의 역사학자 로저 무어하우스는 "나치 독일이 피점령국들을 체계적으로 수탈했다"고 말했다.


그리스가 요구하는 나치 피해 배상금의 역사적 배경 디스토모 학살


나치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굶주림과 전쟁에 대한 지지 상실이다. 따라서 나치는 그리스에서 꿀을, 우크라이나에서 밀을, 프랑스에서 와인ㆍ코냑을, 덴마크에서 베이컨을 수탈해갔다. 나치는 피점령국 국민의 인종에 따라 이를 그냥 빼앗아가거나 보상했다.


일례로 나치는 프랑스인들을 문명인으로 대접했다. 그래서 빼앗아가는 물산에 대해 터무니없는 값이지만 그나마 대가를 치렀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따라서 나치는 우크라이나의 물산을 아무 대가 없이 강탈해갔다.


나치의 눈에 그리스인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스의 기업과 부동산, 올리브 오일, 가죽, 담배, 면화 같은 물품은 그냥 강탈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 해군이 그리스를 봉쇄하자 그리스는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다. 대도시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적십자의 추산에 따르면 1941년 말 아테네에서만 하루 400명이 굶어 죽었다.


나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오른팔인 헤르만 괴링은 피점령국 나치 지도자들에게 "피점령국 사람들이 굶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리스인들은 당시의 '대기근', '대수탈'을 결코 잊지 못한다. 나치는 그리스의 경제를 망가뜨리고 물산을 강탈해 갔으며 그리스인들을 굶주림으로 내몰고 돈까지 빼앗았다.


피점령국 지배에 들어가는 비용을 피점령국이 부담하도록 강제한 게 나치의 정책이다. 심지어 유대인을 우마(牛馬) 수송용 트럭에 실어 가스실로 보내는 비용도 유대인 당사자에게 부담시켰다.


1942년 3월 14일 독일과 이탈리아의 법률 전문가들은 그리스 중앙은행이 나치 독일에 전쟁차관 4억7600만라이히스마르크(1924~1948년 통용된 독일 화폐 단위)를 지불한다는 협약문서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 그리스는 이자는커녕 원금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리스 국민이 독일 정부를 제소하는 것은 어떨까. 영국의 법률 전문가 그레이엄 디프라이스는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국제금융에서 '제로 금리'의 차관이란 존재하지 않는데다 강탈해간 돈이라면 법적으로 차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는 일종의 범죄이기 때문에 이전 전쟁배상과 무관하다." 달리 말해 독일 정부가 그리스에 돈을 돌려줄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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