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시아블로그] 세상은…. 아니 소비자는 정말 공정하다

시계아이콘01분 35초 소요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갤럭시S5 당시 많은 부정적 인식도 있었고 외부의 그런 평가가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깥에서의 평가는 제대로 모르고 내부에서만 후하게 평가를 했던 것 같다. 이번에(갤럭시S6 발표 직후) 느꼈다. 세상은 정말 페어(공정)하다는 것을. 잘 하니깐 잘 한다고 평가를 해준다."


2주전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으로 지난해 내내 교체설에 시달렸던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IM) 사장이 IM 부문 디자이너들을 모아 놓고 한 소회다. 짧은 한마디에 지난 2년간 신 사장의 고뇌가 배어있다.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들을 내 새끼, 내 자식처럼 생각한다던 신 사장에게 쏟아졌던 혹독한 평가를 견디고 절벽 끝에서 가까스로 핸들을 꺽어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신 사장의 깨달음은 결국 소비자들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수년간 각종 소송전과 비방전을 일삼았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근 화해한 대목도 맥락을 같이 한다. 두 회사는 자존심을 걸고 기술 유출 문제부터 시작해 '세계 최대', '세계 1위' 타이틀을 놓고 때론 상대방을 비방하고 때론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며 경쟁을 벌였다.

겉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 두 회사의 변명이었지만 실상 소비자들은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넓은 글로벌 시장에서 수많은 경쟁자들 앞에서 두 회사가 고작 마케팅을 위한 몇몇 단어들을 놓고 벌인 싸움은 때론 흥미를 유발하기도 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기술도 없고, 좁은 내수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던 우리나라 제조업계는 유난히 '세계 ○○'라는 타이틀에 집착해왔다. 한국산에 붙어 있던 값싼 저질제품이라는 꼬리표를 넘어서기 위해선 '세계 ○○'라는 타이틀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산 전자제품의 경쟁력은 평생 못 따라잡을 것 같던 일본을 넘어섰다. 이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유럽의 가전 전문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세계 최대', '세계 1위'라는 수식어 대신 소비자들이 감동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다.


소비자들도 많이 똑똑해졌다. 과거 '세계 ○○'라는 타이틀에 혹해 제품을 선택했다면 지금은 믹서기 하나를 사면서도 꼼꼼히 사용기를 챙겨보고 기능을 비교해 보며 제품을 고른다.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세계 ○○'라는 타이틀이 아닌 실제 제품의 만족도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생각, 소비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오랜 세월 동안 해왔던 자존심 경쟁을 버린 점은 '세계 ○○'이라는 타이틀 대신 소비자들의 엄정한 평가에 귀 기울이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최근 공정위는 귀뚜라미 보일러에 부당광고로 인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귀뚜라미 보일러는 전 세계에서 약 150여 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기술에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독일의 경쟁 업체 대비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보일러 생산량을 두고 '세계 최대' 보일러 회사라며 광고를 해왔다. 중소 업체가 먼저 개발한 제품을 놓고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도 사용해왔다.


이 정도면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제품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세계 OO'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사용할지만 고민했던 결과는 소비자들의 실망으로 다가왔다. 최고의 자리에서 퇴출 위기까지 몰렸던 신 사장이 지난 2년을 두고 "세상은 공정하다"고 말했던 깨달음을 되새겨 볼 때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