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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의 世·市·人]경제에는 공짜점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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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의 世·市·人]경제에는 공짜점심이 없다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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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飮食男女)는 인간의 대표적 본능이다. 그중에서 생존을 담보하는 '밥'에 대한 욕구는 원초적이고 보편적이며 절대적이다. '밥숟가락을 놓다'라는 말은 완곡하지만 죽음의 본질을 꿰뚫는 비수같은 표현이기에 밥은 삶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밥은 이성도, 감성도 아니고 다만 현실일 뿐이다. 인간세(人間世)에서 밥은 모든 가치의 기초이면서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


경상남도가 무상 급식을 저소득층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 방식'으로 바꾸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18일 홍준표 경남지사를 항의 방문했다. '아이들 밥그릇'을 놓고 벌어진 설전(舌戰)에서 문 대표는 차별 없는 급식으로 '보편적 이상(理想)'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홍 지사는 예산이란 현실을 들어 '선별적 효율'을 강조했다. 홍 지사가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고 공부하러 가는 곳"이라고 하자, 문 대표는 "의무교육은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먹이는 일도 포함한다"고 되받았다. 면벽(面壁)한 채 귀는 막고 입만 열어 '평균적 복지'를 찾는 두 정치인의 언설(言說)은 산술평균과 기하평균의 차이만큼 미묘한 것이었지만 생각의 차이는 깊고 멀어서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각자의 벽을 등지고 소득 없이 헤어졌다.

지금은 경제학용어처럼 쓰이는 '공짜점심'이라는 말은 원래 미국 서부의 술집에서 술을 일정량 이상 팔아주는 단골손님에게 점심을 공짜로 제공했던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그러나 술을 마시더라도 취하지 않거나 술이 깬 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신이 지불하는 술값에 점심값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행위에 대하여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다는 뜻의 무상(無償)이란 공짜의 한자어이다. 공짜는 달콤하고 손쉽고 편안하다. 그 유혹은 치명적이라 눈앞의 공짜에 사람들은 이성의 갑옷을 벗고 지혜의 칼을 내려놓는다.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권력에 눈먼 정치꾼들이 제시하는 황당한 공약(空約)에 속아 누구나 쉽게 '시대의 공범(共犯)'이 된다.


한국경제도 한때 공짜점심의 덫에 걸려 휘청거렸다. 외환위기를 손쉽고도 빨리 극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부추긴 내수와 부동산 경기의 후유증이 그 대가를 요구하고 나섰던 것이다. 어설픈 저금리정책과 방만하게 풀린 통화량은 부동산 불패신화를 만들었고 꺼지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거품을 만들었다. 미 실현소득을 훨씬 넘어서는 방종한 소비로 이룬 성장은 고스란히 '카드대란'이란 빚으로 돌아왔다. 지난 12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75%로 낮췄다. 2014년 말 가계부채는 1089조원이고 이 중 주택담보대출잔액은 365.6조원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유령처럼 시장을 떠도는 단기부동자금은 795조원이다.

자유 시장 경제체제의 폐해인 과도한 사적이윤추구, 부익부 빈익빈 등의 경제적 불균형을 제거하고 분배의 평등을 도모함으로써 사회주의와의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탄생한 복지국가 시스템은 인류의 오래된 미덕인 공동체적 상부상조의 기능을 국가가 대신하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복지는 결국 경제와 정치의 영역이다. 경제성장 없는 복지의 확대는 성립할 수 없는 명제이고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사회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은 정치의 기술적 과제이다.


세상만사가 모두 그러하지만 특히 손익의 계산이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한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예외 없이 혹독하게 치러야 한다. 이론 경제학의 대가인 미국의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은 그의 명저, 경제학(Economics)에서 '경제에 공짜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a free lunch in economy)'고 썼다, '눈앞의 이익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라(見利思義)'고 한 공자의 언명(言明)은 공짜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의 윤리가치적 표현이다. 황사처럼 난무하는 무상복지 논쟁 속에 불황의 봄날은 간다.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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