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의 뒤를 이은 율리아누스 황제는 즉위하자마자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악화된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황실과 정부의 관료를 대규모 감원하여 '작은 정부'를 만들었다. 군인들의 봉급을 동결했고 군대와 정부조직 도처에 박혀 하는 일 없이 봉급을 축내는 성직자들을 축출하였다. 황제 자신은 검소한 옷과 거친 음식으로 솔선했고 겨울에 난방조차하지 않았다. 귀족과 부유층의 자발적인 세금 헌납을 유도하는 명예세의 일종인 금관세(金冠稅ㆍGolden Crown Tax)를 도입하여 부(富)에도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이 수반된다는 '리시에스 오블리주(richesse oblige)'의 기풍을 진작하였다. 교회와 성직자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던 비과세정책을 전면 폐지하였다. 서민층에게는 획기적인 감세 정책을 펼쳤다. 25솔리두스(solidusㆍ로마제국의 금화)였던 인두세(人頭稅)를 7솔리두스로 낮췄다.
과감한 개혁의 와중에 기독교를 박해했다는 혐의를 받아 오늘날까지 이름 뒤에 배교자(背敎者ㆍapostate)라는 오명(汚名)을 달고 있는 황제가 재위 19개월 만에 페르시아 원정 중 전사하자 모든 것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국가의 사회복지법안은 폐지되었고 세금은 2배 이상 뛰었다. 군대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세금을 거두는 악습은 교회에 대한 면세제도와 함께 부활했다.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눈물과 한숨으로 뒤덮혔다. 극심한 가난으로 세금을 내지 못하는 자들에게 무자비한 채찍질과 혹독한 고문이 자행되었다. 부모는 아들을 노예로 팔고 딸에게 매춘을 시켰으며 이렇게 모은 돈을 세금으로 납부했다." 영국의 역사저술가 스테판 도웰(Stephen Dowell)이 1885년 펴낸 저서 '세금의 역사(A History of Taxation)'에서 묘사한 이 악랄한 세정(稅政)의 풍경은 이후 로마제국 쇠망(衰亡)의 역사 전체를 투영했다.
권력으로 가혹한 세금을 징수하여 백성을 핍박하는 행위를 '취렴(聚斂)'이라 한다.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뽑는 것처럼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진부하고 오만하며 가학적(加虐的)인 조세철학을 신봉하는 정부가 '13월'에 '위를 덜어 아래에 보탠다(損上益下)'는 구실로 취렴에 나섰다. '13월의 보너스'를 기대하며 단꿈에 젖어 있던 거위들은 경악하고 분노했다. 불황의 삭풍을 털이 뽑힌 알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다가 쓰러지는 악몽에 시달렸다. 세금을 한꺼번에 수십, 수백만 원 더 내야 하는 것도 기가 차는데 법인세나 자본소득, 고소득 자영업자, 지하경제 등의 세원(稅源)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그저 털기 손쉬운 '유리지갑'만 갈취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연말정산으로 확보된 총 9300억원의 세수를 복지에 사용하겠다고 하면서 '증세(增稅)없는 복지'라는 형용모순의 공약을 지키겠다고 앞뒤 맞지 않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는 절망했다. 급기야 대통령이 나서 유감을 표명하고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2013년 말 소득세법 개정안을 찬성 245표, 반대 6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통과시킨 여야가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를 성토하고 경제부총리를 책임추궁했다. 같잖고 가증스러웠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방안을 발표 하루 전에 전격적으로 백지화했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20%대로 급락했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의 제자 유약(有若)에게 흉년이 들어 재정이 부족하다며 대책을 물었다. 유약이 생산량의 10%를 징수하는 철법(徹法)을 시행하라 하니 애공은 20%도 부족하다며 난감해했다. 유약이 말했다. '백성이 풍족하면 임금이 어찌 부족하며, 백성이 부족하면 임금이 어찌 풍족할 수 있겠습니까?' 세금의 중심에는 백성의 삶이 있음이다.
누구를 위한 복지이며 어디에 쓰려는 세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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