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구 신월동 언덕바지에 있는 경로식당의 점심은 이르다. 인근의 경로연금대상자와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점심 한 끼를 제공하는 이곳은 10시30분이 되면 갓 지은 밥 냄새가 퍼져나가고 아침을 거른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해 긴 행렬을 만든다. 그러나 밥이 익는 향기에 한 끼로 하루를 연명하는 그들의 시장기는 솟아나지 않는다.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니는 만성적 시장기는 식욕을 돋우는 기능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일식삼찬(一食三饌)이 담긴 식판을 받아 자리를 잡는다. 남녀가 유별(有別)하던 시절 내외(內外)하던 습관이 남아있어 남녀는 따로 앉는다. 밥을 마주한 노인들은 말이 없다.
끼니는 때와 같은 것이라 산 자에게 어김없이 찾아온다. 살아있음을 확인이라도 하듯 에우든, 굶든, 사정없이 찾아오고, 건너뛰든, 이어지든 속절없이 들이닥친다. 두 끼를 건너뛰고 맞이하는 한 끼로 하루를 견뎌내야 하는 노인들이 밥을 대하는 모습은 생명의 제의(祭儀)를 치르는 성자(聖者)와 같아서 진지하다 못 해 엄숙하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때운 끼니와 건너뛴 끼니 사이, 그 격절(隔絶)의 긴 시간은 거칠고 메마를 것인데 그리하여 에울 수 있는 끼니를 당하면 조바심으로 들뜰만도 한데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천천히 수저를 놀려 밥을 입으로 옮겨가는 동작은 유장(悠長)하고 호흡은 고르고 길다. 세월의 침식으로 부실해진 치아 탓에 대부분 국에다 밥을 말아 먹지만 아무도 남기지 않는다.
이른 점심을 먹고 설거지와 식당 청소를 끝내고 나온 나는 참담했다. 한 해 20조원이 넘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이 발악적(發惡的)인 풍요와 잉여의 시대에 하루에 한 끼만으로 버려진 삶을 연명해야 하는 부모 같은 노인들을 대해야 하는 기막힌 불균형을 감당할 수 없어 괴로웠고 복지를 '보편과 선별'로 나누어 대안 없이 소모적인 논쟁만 일삼는 무능한 정치권의 몰지각함이 한심했다. 자학(自虐)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폭식과 거식(拒食), 과식과 단식이 일상화된 세상이 무서웠고 영양과잉으로 온갖 질병에 시달리거나 무리한 다이어트를 결사적으로 감행하다가 죽어 나자빠지는 내 이웃이 즐비함이 슬펐다. 겁도 없이 아내에게 반찬 투정하거나 가끔 미식(美食)을 찾아 쓸데없는 발품팔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내 철없는 초로(初老)의 나이가 부끄러웠다.
'50세에 비단 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고 70세가 되면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은 법이니 따뜻하지 않고 배부르지 않은 것을 동뇌라 한다(五十非帛不煖 七十非肉不飽 不煖不飽謂之凍?)' 고 한 맹자는 노인을 잘 공양해(善養老) 춥고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을 왕도정치의 근본으로 제시했다. 그는 또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君 民爲天 民 食爲天)'고 했는데 이 순환적 명제는 결국 '밥은 하늘의 하늘'이라는 말로 귀결(歸結)된다. 밥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나 복지의 허망함을 질타하는 성현의 준열한 통찰이다.
최저생계비는 원래 인간이 생물적 존재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비용인데 요즘에는 이에 건강과 문화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포함된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작년 12월1일 발표한 2015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62만7281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작년 10월 낸 보고서에서 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노인 가구는 약 132만가구로 전체 노인가구의 50.7%라고 밝혔다. 이 중 1인가구는 약 86만 가구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우리는 이미 고(高)복지가 시작된 상태이며 새로운 복지를 만들어서 다른 선진국을 따라가선 안 된다"고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린 터키 이스탄불에서 말했다.
복지사회의 그늘은 깊다.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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