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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뒷談]비올때 우산 뺏는 은행 '놀부대출'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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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따라 같이 움직여 호황땐 집값상승 주범
순응성이 높아질수록 금융버블 부작용 커져

[금융뒷談]비올때 우산 뺏는 은행 '놀부대출'論 비올때 우산 뺏는 은행 '놀부대출'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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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비올 때 우산 뺐는다"

은행의 대출행태를 풍자한 말이다. 돈이 필요 없을 때 굳이 찾아와 써달라고 부탁하다가도 정작 돈이 필요하면 얄짤없이 거둬간다. 경기 호황기에는 대출을 더 많이 해줘 경기를 과열시키고 경기가 나쁠 땐 대출을 조여 경기를 더 악화시킨다. 그래서 "햇볕이 쨍쨍할 때 억지로 우산을 안겨줬다가 막상 비가 오면 우산을 뺐는다"며 꼬집는다. 은행의 이런 행태는 '금융의 경기순응성'이란 말로도 불린다. 대출이 경기와 한방향으로 움직여 정작 돈이 궁할 때는 경기가 좋지 않아 대출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은행도 할말은 있다. 경기가 급전직하해 부도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마냥 대출을 늘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는 항변이다. 그런 요구를 들어주다 부실채권이 생기면 은행이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지거나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호경기 때 신용위험이 낮아지고 불경기 때 신용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를 반영해 여신이 늘고 주는 것 역시 자연스런 흐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의 경기순응성이 위험한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어서다. 금융위기 발생 직전 10여년 동안 세계적으로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등 호황기가 있었다. 이 기간 가계 주체들은 주택 가격 추가 상승을 기대해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모기지 대출을 경쟁적으로 취급했고 막대한 돈이 풀렸다. 집값은 뛰었다. 기존에 담보로 맡긴 주택 가격이 오르면서 추가 대출 여력이 발생해 '주택담보대출 증가-주택가격 상승'이라는 악순환에 빠졌다.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외형적으로 더 좋게 보이면서도 시스템 전체의 리스크가 축적되는 전형적인 버블이 생긴 것이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은행이 비올 때 우산 뺐는 이유를 조사했고 크게 세가지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첫번째는 '리스크 평가 편향' 가능성이다. 경기 호황기에는 기업이나 가계 현금흐름이 좋아 은행은 차입자의 리스크를 과소평가한다. 장사가 잘 될 때 기업이 시설확장이나 새로운 사업에 나서면서 돈이 더 많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경기가 하강기에 접어들면 리스크가 과대 평가돼 자금경색이 발생한다.


담보가치 변화도 이유 중 하나다. 주택담보대출은 주택을 담보로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것인데 경기가 좋아지면 주택가격이 올라 담보가치가 높아지니 돈을 빌려줄 여력이 커진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미국에서 나타났다.


은행에 부과되는 필요자본규제가 경기순응성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은행으로 하여금 자산의 일정비율을 자기자본으로 보유토록 한다. 자본비율을 규제하는 것은 은행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자산의 일부가 부실화되더라도 이를 흡수할 수 있으려면 완충 역할을 하는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뜻에서 만든 규제가 예상치 않게 경기순응성을 크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예컨대 BIS 자기자본비율 8%는 위험가중 평균자산이 100원, 자기자본이 8원이면 BIS 비율을 충족시키는 셈이다. 하지만 갑자기 경기가 나빠지면 은행이 갖고 있는 자산의 위험도가 높아진다. AAA기업이라도 등급 하락 위험에 노출된다. 전체 자산규모가 그대로인데도 위험가중평균자산이 110원으로 커질 수 있다. 8%를 맞추려면 자기자본을 8.8원 늘려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으니 대출을 줄여 비율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에 두고 학계나 국제금융기구에서는 경기순응성을 완화하려는 방안을 여러모로 논의 중이다. 먼저 자기자본 규제를 만드는 국제결제은행(BIS)에서는 경기 대응 완충자본이라는 제도를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호황기에 자본을 추가로 적립토록 해 대출을 억제하고, 불황기에는 적립한 자본을 소진할 수 있게 했다.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자금이 실물 부문에 공급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한 것이다.


정부가 때 되면 나서서 중소기업의 '기술금융'을 강조하고 은행들의 보수적인 여신행태를 비판하는 것도 금융의 경기순응성을 막기 위한 일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2012년 한국은행이 내놓은 '금융의 경기순응성 측정 및 국제 비교' 보고서는 "호경기보다 불경기에 경기순응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면서 "경기순응성이 높은 금융변수와 금융권역을 중심으로 정책대응을 모색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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