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싹이 파릇파릇 고개를 내밀었다. 보리밭은 누군가에게는 회상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에게는 관능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극도로 궁핍했던 시기에는 기나긴 보릿고개를 떠올리게 했다. 세상 모르는 아이들에게 보리밭은 놀 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아이들은 이삭이 팬 보릿대를 꺾어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추수가 끝나고 쌓인 보릿짚 무더기는 개구쟁이들의 레슬링장이 됐다.
시인 박화목은 보리밭을 걸어가는 외로운 이의 그리움과 쓸쓸함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뉘 부르는 소리 있어/나를 멈춘다/옛 생각이 외로워/휘파람 불면/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돌아보면 아무도 뵈지 않고/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이 정서에 곡을 입힌 이가 작곡가 윤용하다. 그는 1951년 부산에서 재회한 박화목에게 "아무리 피난살이지만 보람 있는 일을 해야 할 것 아니겠나"라며 "가곡을 만드세"라고 제안한다. 박화목이 '옛 생각'이라고 붙인 시 제목을 윤용하가 '보리밭'으로 바꿔 곡을 붙인다.
보리밭의 멜로디는 서정적이다. 그러면서도 애조 띤 가사와 함께 처지지 않는다. 추억에 잠시 발을 멈추고 돌아봤다가 이내 고독을 떨쳐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윤용하는 외로운 작곡가였다. 주류가 아니었고 주류에 서기를 거부했다. 그의 학력은 보통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해방 후 친구인 성악가 오현명이 남산음악학교에서 공부를 더 할 것을 권했지만 듣지 않았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이 무슨 자격이 필요하단 말이오?"라고 반문할 뿐이었다.(박화목 '윤용하 일대기')
윤용하는 순수음악을 고집했다. "예술의 순수성을 지킨다"며 대중음악 일자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순수함를 추구한 윤용하는 어린이들이 즐겨 부를 우리 노래도 만들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요즘도 많이 불리고 있다.
그는 황해도 은율에서 4대째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따라 만주에 가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성가대에서 노래하고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음악을 배웠다. 프랑스 신부는 그를 음악신부로 키우려고 했다. 그러나 음악신부가 되려면 먼저 일본에서 1년 동안 라틴어와 불어를 배워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부모가 반대했다. "자식을 왜놈 땅에 보낼 순 없다"는 것이었다.
박화목은 윤용하가 "검은 얼굴에 눈동자가 크고 검고 서글서글했다"고 전했다. 올해는 순수하고 가난하게 살다 43세에 절명한 작곡가 윤용하의 50주기다.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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