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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시각(視覺)과 시각(視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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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시각(視覺)과 시각(視角)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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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유혼'의 왕조현과 '화양연화'의 장만옥이 함께 출연한 '청사'라는 1993년작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1000년 묵은 백사 백소정(왕조현 분)과 500년 된 청사 소청(장만옥 분)이 인간이 되기 위해 속세로 나오면서 시작된다.

영화 제목이 청사이니 장만옥이 연기한 인물(?)이 주인공인지는 이 글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이 영화를 화제 삼은 것은 '청사(靑蛇)'라는 제목이 영어로 '그린 스네이크(Green Snake)'였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영화에서 청사는 파란색이 아니라 녹색이었다. 그런데 한자로 녹색을 가리키는 녹(綠)자 대신 청(靑)을 쓴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중국에서 청(靑) 글자로 녹색과 파랑을 다 나타냈고 요즘도 그리함을 알 수 있다. 파란 하늘을 청천(靑天)이라고 했고 녹음 우거진 산을 청산(靑山)이라고 불렀다. 중국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도 '푸르다'가 비슷하게 쓰였다. 산도 푸르다고 했고 강도 푸르다고 표현했다.

이는 중국 문화권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파랑은 녹색 계열로 분류됐다가 가장 나중에 독자적인 색채로 분리됐다. 철학자 라자루스 가이거의 연구에 따르면 그리스ㆍ헤브루 문명과 코란과 힌두 베다 문헌에는 하늘이 자주 언급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하늘을 파랗다고 묘사하지 않는다.


고대에는 파랑이 별도의 색채가 아니라 녹색이나 짙은 그늘과 비슷한 색조로 분류됐다. 자연에 파란색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파란 동물도, 파란 꽃도 없다. 하늘은 파랗지 않나? 선입견이나 지식이 없는 아이는 하늘이 파랗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보고가 많다. 또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힘바족(族)은 파랑과 녹색을 구분하지 않고 이 부족한테는 파랑을 가리키는 단어도 없다.


반대로 이집트는 고대부터 파란 염료를 활용했고 그래서 파랑이라는 색채를 인식했다. 라피스라줄리(청금석ㆍ靑金石)라는 짙은 청색 광석을 장신구 재료로 활용하기 시작한 곳이 이집트다.


지난주 드레스 한 장이 세계인의 눈과 뇌를 혼란에 빠뜨렸다. 어떤 이는 파란색 바탕에 검정 가로 줄이 그어졌다고 봤고, 다른 이는 흰 바탕에 금색 줄이라고 말했다. 이 드레스로 기본적인 감각인 시각이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사람은 문화에 따라 색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또 색채가 문화와 무관하게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기도 한다. 타인의 '시각'을 교정하려고 들기보다는 다른 시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cobalt100@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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