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어느 병사가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40여㎞를 숨가쁘게 달려와 승리 소식을 전하고 쓰러져 죽은 것이 마라톤의 기원이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그보다 덜 알려진 얘기, 어떻게 그리스군은 그보다 몇 배나 더 병력이 많은 페르시아 군대를 맞아 이길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자.
마라톤 전투의 승리는 행운과 기적으로 얻어진 것으로 흔히 전해지지만 실은 고대 그리스의 중무장 보병은 매우 우수한 군대였다. 병력이 절대 열세였지만 그걸 이겨내고 페르시아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을 만큼 그리스 군대가 우수했던 것은 무엇보다 이 군대가 '애국군대'였기 때문이다.
이 애국군대의 바탕에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원리가 있었다. 그리스 군대의 구성과 운영에는 정치제도에서의 민주주의 원리가 적용됐다. 다수가 대등하게 참여하는 민주주의적 원리를 군대제도에 구현함으로써 그리스는 막강한 '시민군대'를 조직할 수 있었다. 방진이라는 대형에는 모두가 동등한 시민으로 참여한다는 그리스 민주주의 정신이 살아 있었다. 그리스 보병의 힘은 결국 그들의 애국심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애국심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서 나왔으며,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시민의 덕성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애국심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던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안보의 원천은 강병(强兵)이나 첨단 무기 이전에 무엇보다 백성들의 신뢰에 있다. 이는 서양만이 아니라 동양에서도 고대 정치사상은 물론 손자병법 등의 병서에서도 얘기하는 확고한 진리였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애국'에 대해 얘기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나이 든 이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애국 열풍이 불고 있는 듯하다. 이들의 순수한 애국심은 높이 칭찬할 만하다. 다만 애국적이고자 한다면 애국할 나라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므로 애국자이기 앞서 먼저 '건국자'가 돼야 할 듯하다. 애국할 만한 나라로 만드는 의미에서의 건국자다.
애국이 어떤 국가든 간에 '모든'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켜주고 높여주는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국가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라고 한다면, 필요한 것은 맹목적이지 않은 이성적인 애국심일 것이다. 애국은 그 비장한 결의와 다짐도 좋지만 똑똑한 애국심이어야 한다. 강력한 군대, 강력한 나라란 무엇인지를 보여줬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필리아(Philia)'처럼 지혜로운 애국심이 필요하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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