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일본화(日本化) 공포에 빠졌다. 불임(不姙)의 경제, 영구적인 불경기(secular stagnation)라고도 부른다. 일본화란 버블 붕괴 이후의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저성장·고령화가 동반돼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장기불황과 비슷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경제주체들은 줄어든 일자리와 턱밑까지 차오른 빚 부담 탓에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다. 경기회복기 때 늘 나타났던 주택건설 붐도 기대할 수 없다. 잠재성장률은 떨어지고 청·장년 생산가능인구는 사라진다. 디플레이션 우려도 커진다. 경제 전반에 수요와 공급이 떨어져 기업도산과 실업이 늘고, 이는 수요를 더욱 위축시켜 물가하락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일본은 이렇게 '잃어버린 20년'을 겪었지만, 이런 현상이 우리경제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적색경보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이에 맞춰 아시아경제신문은 경제학자들을 만나 '한국경제 일본화되나'를 주제로 재패나이제이션(Japanization)의 현실과 문제, 대안 등을 엮은 신년 빅인터뷰 연재시리즈를 싣는다.<편집자주>
내수 빈약해 20년전 이웃나라의 쇠퇴 때보다 더 취약하다는 전영수 한양대 교수
"개발·성장 모델 아닌, 감축성장시대에 맞게 시스템 바꿔라"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8년 전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란 책을 썼다. 고독사, 무연(無緣)사회, 망주(妄走)노인, 노노(老老)격차 등 고령사회 일본의 폐부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독자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그거 일본 이야기인데…왜?"라고들 했다. 그랬던 책이 불과 8년이 지난 오늘 한국의 현실이 됐다. 최근에는 "이거 한국이야기인데?"라고 되묻는 독자들이 늘었다고 했다. 책 지은이는 전영수 한양대 일본학과 특임교수다.
최근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나 한국경제의 재패나이제이션(Japanization) 문제의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전 교수는 한 시간 가까이 한국경제의 일본화 우려와 실상에 대해 성토했다. 모호한 메시지는 하나도 없었다. 주저없이 현안의 맥을 짚었고 막힘없이 풀어냈다.
◆저출산 문제 법으로 손질해야
'2013년 합계출산율 1.19명. OECD 최저.' "제때 인구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준비없이 노령사회를 맞딱드리게 된다." 전 교수의 경고다. 하지만 인구정책은 답보상태다. 전 교수는 그 이유로 세가지를 꼽았다. "돈이 많이 들죠. 시간도 오래 걸려요. 성과를 내기도 어려워요. 이걸 조합하면 임기있는 정책관료들이 인구대책을 내놓기 쉽지 않아요. 뛰어난 관료가 진정성과 공복정신 갖고 (인구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대한다? 힘들죠. 결국 법을 바꾸는 거 밖에 없어요. 생활관련법들 노동법 근로기준법 등에서 출산과 보육, 교육을 사회화해주도록 제도적 손질을 해야 합니다. 예컨대 임신이나 출산하면 1년 쉬게하고, 근로시간도 주 40시간으로 못박으면 되죠. 관료가 바뀌더라도 이어갈 수 있도록요. 돈 20만원 줄테니 애낳아라? 바보가 아닌이상 이말 들을 사람 없습니다. 택도 없죠."
그는 특히 실버산업에 대한 환상도 깨야 한다고 했다. 그 예로 일본의 '단카이 버블' 논쟁을 제시했다. 단카이버블은 전후 1차 베이비부머인 단카이(1947~1949년 출생자)세대가 2007~2009년 대량 정년퇴직해 실버시장이 만개할 것이란 기대가 높았지만, 소비의욕이 떨어진 이들이 지갑을 닫아버려 버블이 깨져버린 현상을 뜻한다. "평균과 중앙값을 잘 구분해서 봐야합니다. 일본노인들도 거액을 가진 일부가 평균치를 끌어올리지, 중위소득에 있는 노인 중엔 열악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실버시장이 생각처럼 크지 않았죠. 우리나라는 훨씬 더 열악해요. 노인들의 상대빈곤율이 50%를 넘습니다. 고정자산에 상당부분 부채를 많이 떠안고 있고, 가처분소득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도 없죠.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실버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왜 우리나라 노인들은 돈이 없을까. 전 교수는 이를 '세대파괴·공멸적인 부조시스템' 탓이라고 했다. "과거 농경사회에는 자녀가 보험기능을 했어요. 노동인구 뿐만 아니라 노후에 나를 부양하는 역할을 담보했어요. 그런데 그 공식이 깨졌어요. 이건 인구구조변화와도 맞물리는 것인데 자식 한두명에 내 삶을 올인하는 거죠. 본인이 100이 있으면 노후에 50을 써야 하는데 여기서 25만 노후에 쓰고 75를 자식한테 주려고 해요. 그럼 자식들이 100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죠. 그건 고도성장 때, 자고 일어나면 인플레였던 시대에나 가능하다는 얘기에요. 한정된 자원을 과부하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그렇다면 삼포세대(취업·출산·결혼 포기세대)로 알려진 지금의 청년층이 늙으면 어떻개 될까? 전 교수는 "적절히 대비하지 않으면 디스토피아가 온다"고 했다. 그는 이를 '이케아 세대(좋은 스펙을 지녔음에도 낮은 급여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라고 이름 붙였다. "소위 세대를 잘 선택해 태어나서 20대까지는 멋지게 살았죠. 한두자녀로 태어나 부모의 집중적인 수혜를 받았어요. 배고픔도 모르고 자랐죠. 근데 그런 세대가 돈을 벌려고 하니까 앞으론 1~2%대 성장 세대가 왔어요. 5~10%대 성장의 시대는 절대 안돌아오죠. 그말은 눈높이를 낮추고 전문성을 키우지 않으면 절대 생존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수출 의존 한국 日本化 치명적
전 교수는 한국의 일본화(日本化)가 빠른 속도로 오고 있다고 했다. 전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다. 내수시장이 빈약하고, 가계로부터 온 부채가 심각한데다 노인들의 빈곤율도 훨씬 더 극심하다.
"일본은 내수가 86%입니다. 한해 국내총생산(GDP)는 500조엔에 조금 못미치는데 이 중 내수시장이 400조엔 정도 되요. 일본이 0% 성장을 했다고 해도 1년동안 부가가치 400조엔을 만들어낸겁니다. 반면에 우리는 무역의존도가 100%를 넘어요. 한국은 한해 GDP가 1000조'원'밖에 안되죠. 지금까지 수출포트폴리오를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로 다변화해서 나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 처럼 미국에서 시작해 연쇄적으로 시장이 어려워지면 큰일나죠. 외수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잖아요."
이 때문에 구조개혁의 성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보면 체제 곧 레짐을 바꾸는 거에요. 더이상 개발경제의 성장모델은 안되요. 감축성장에 맞게 바꿔야 하는데 이게 잘 안되니 괴리가 생기는 겁니다. 옛날에는 9급공무원 한 명이 돈 벌어 4인 가족이 먹고살고 말년에 집 한채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부가 대기업을 다녀도 애 한명 키우기가 힘듭니다. 여기에 맞게 정책을 바꿔야 하죠."
그는 "한국의 많은 제도와 정책들은 인구변화 구조에 맞춰서 바뀐다"고도 밝혔다. "베이비부머는 1955년~1963년생이죠. 중간이 58년 개띠에요. 이들이 서른살이 된 해가 1988년입니다. 결혼을 해야죠. 1989년 노태우 정부 시절 200만호 건설계획이 이때 나왔죠. 이들이 40대가 된 것이 1998년입니다. 2008년 퇴직했죠. 1998년의 가장 큰 교훈은 한국경제가 성장안할 수도 있다는 거였어요. 내 자식은 경쟁력을 만들어줘야지 해서, 무지막지하게 사교육을 시켰죠. 2000년이 왔어요. 먹고살아야 하는데 힘들죠. 이 때 마지막 한 잔치가 2000년 초 중반 부동산 버블입니다. 서로 주고받으면서 집값을 키운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40~50대들이 가진거 20~30대가 받아줘야 하는데 그럴 여력도 환경도 안되죠. 여기서 최경환노믹스의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아베노믹스, 호재와 악재 균형있게 봐야
그렇다면 대안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그는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해선 냉철하게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국민이나 언론도 역사적 문제 탓에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으레 '당연히 망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보지만, 꼼꼼히 보면 그 안에서 배우고 취할 것들이 많다는 것. "아베노믹스는 경제학적으로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죠. 일본국민들에게도 딜레마 있습니다. 아베를 지지할수록 내수물가가 올라 내 삶은 더 곤궁해집니다. 하지만 일본 유권자들이 그걸 알면서도 아베를 찍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바로 말을 이었다. "경제는 이론과 그래프로 풀수 없다는 걸 일본의 20년이 가르쳐줬어요. 그 어떤 경제학적 이론도 다 깨졌죠. 아베가 잘 한 건 '확실성'입니다. 아베 이전엔 내일이 보이지 않으니 돈을 쓰지 않았죠. 하지만 오늘 10만엔이 내일 20만엔이 될 것이란 확신이 있으면 돈을 쓸수 있습니다. 아베는 경제를 살릴 때 까지 무조건 정책을 쓰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줬습니다. 시장은 첨엔 정부를 이기려고 하죠. 그런데 아베가 2018년까지 간다고 하죠. 4년을 이긴 금융시장 채권딜러는 아무도 없죠. 그러면 정부정책을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전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세계가 일본화 된다는 최근 경제계의 우려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많은 국가들이 달성했다"고 답했다. "가냐 안가냐는 결국 정책의 연속성에 달려있습니다. 시장과 정부가 한방향으로 가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주고, 많은 사람들이 그 신호를 보고 착각하지 않도록 그때그때 몰아가는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그걸 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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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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