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그러했듯이 '쎄시봉' 역시 이 말을 깊이 공감케 한다. 가슴 저릿한 여운이 중년의 남성 관객마저 울렸다.
22일 오후 서울 성동구 CGV왕십리에서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쎄시봉'은 극장가 '복고 흐름'에 정점을 찍는 영화임에 분명했다. '강남1970' '국제시장' 등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중장년층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는 요즘, '쎄시봉'은 아름다운 음악과 사랑이 있어 좀 더 낭만적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건축학개론'이 떠올랐던 건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저릿한 감동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땐 그랬지'라며 1960년대에 공감할 수 없는 세대마저도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성에 젖을 수 있게 하고, 추억의 포크송이 시간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영화다.
'시라노; 연애조작단' '광식이 동생 광태' 등을 연출하며 '스크린의 로맨티스트'로 불린 김현석 감독은 신작 '쎄시봉'을 통해서도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발휘하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이 영화는 마치 오래됐지만 소중히 보관돼 예쁘게 빛이 바랜 책 같다.
배우들의 호흡도 좋았다. 대세배우로 떠오른 강하늘과 무서운 신예 조복래가 맞추는 하모니는 전율을 선사한다. 쎄시봉이 배출한 전설의 포크 듀오 트윈폴리오의 윤형주와 송창식을 완벽하게 연기한 두 사람 덕에 관객들의 몰입도는 더욱 상승했다.
또 자유분방한 영혼 이장희를 연기한 진구는 콧수염까지 직접 기르며 캐릭터를 훌륭하게 그려냈고,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쎄시봉'의 슈퍼스타 조영남 역을 맡은 김인권은 검정색 뿔테 안경과 파워풀한 무대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인공 정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1994'를 통해 여심을 낚아챈 그가 고심 끝에 선택한 이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많은 이들의 기대가 높았다. 극 초반 특유의 건들거리는 연기로 웃음을 주지만 후반부에는 몰아치는 감정 연기로 "역시 정우"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첫눈에 반한 민자영(한효주 분)을 위해 음악을 시작한 통영 촌놈 오근태로 분한 그는 가슴 절절한 첫사랑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중년 남성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뭇 남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쎄시봉 뮤즈 민자영 역의 한효주 또한 통통 튀는 유리구슬 같은 매력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잡는다.
이 작품은 쎄시봉 원년멤버의 사연과 음악 탄생 비화 등을 바탕으로 제작됐지만, 허구의 인물 오근태와 민자영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다큐'가 아닌 '극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신없이 변해가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그리워했던 이들에게는 단비 같이 느껴질 영화다.
서정적 가사와 가슴을 울리는 멜로디들은 촌스럽게만 느껴졌던 통기타 음악의 매력을 젊은 세대에게 전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득, 떠나보낸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가슴에 묻어둔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많이 아릴 수 있다. 개봉은 오는 2월 5일.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