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민심이반 차단 포석..표심 관리 목적도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전슬기 기자] 여당 대표가 '사실상 증세'를 인정하고 납세자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에 대해 올해부터 소급적용하겠다고 밝힌 것은 소위 월급쟁이의 민심이반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어린이집 교사 폭행과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이 잇달아 불거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월급쟁이 민심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특히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기는 부모 가운데 상당수가 급여생활자라는 추측이 나오면서 우려는 더욱 커졌다.
여기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직접 나서 간이세액표를 조정하고 세금 분납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의 연말정산 보완대책을 밝혔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동안 여야가 외면한 월급쟁이의 분노가 연말정산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야는 그동안 서민,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 초점을 맞췄을 뿐,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중산층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전국 1600만 명 급여생활자 가운데 과세대상은 1100만여 명을 차지할 정도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류다. 하지만 과세에 따른 혜택은 없고 세금만 거둬가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이번 연말정산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세법 개정안을 논의할 때 월급쟁이 등 중산층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음에도 정치권이 묵살해왔다"면서 "결국 그게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서민은 정치권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기 때문에 소득하위 70% 등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챙기는 시늉을 해왔지만 중산층으로 대표되는 월급쟁이는 방치했다"면서 "이들을 세수의 대상으로만 생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평론가는 "중간층의 여력이 과거만큼 크지 않다"면서 "한계 상황에 봉착해 빈곤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세금폭탄 위력은 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은 표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장 4ㆍ29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까지 여파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좋은 취지에서 연말정산 제도를 개선했어도 선거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당내에서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당의 경우 타격이 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과세대상으로 분류된 연소득 4000만원 이상인 월급쟁이 가운데 상당수는 여당지지층이기 때문이다.
이종훈 평론가는 "중간층 대부분을 중도 보수로 봐야 하는데, 일부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이들의 민심이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위기감이 증폭되면서 여당의 움직임은 더욱 긴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공제항목 조정과 관련해 "연말정산이 마무리되면 모든 것이 검토대상이 될 수 있다"며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나 정책위 수석부의장도 "중산층 이하에 혜택이 집중되도록 연말정산제도를 조정하겠다"고 했다가 하루만에 "연말정산 결과를 보고 개선사항을 파악할 것"이라며 혜택을 확대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전슬기 기자 sgj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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