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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아파트 이웃사이, 책이 '접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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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참이슬아파트, 전국 최초 '마을학교' 운영…지난해 21개 지자체서 벤치마킹 다녀간 '명소'


[아시아경제(시흥)=이영규 기자] 한국인의 절반가량이 살고 있는 주거공간인 아파트. 중산층의 상징으로, 탁월한 재테크 수단으로, 편리한 공동주택으로 각광받으며 전국 어디에든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는 '집'이면서도 '집'이 아닌 곳이다. '성냥갑'이라는 별칭처럼 획일화된 공장식 단지에서의 삶은 회색빛이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를 안다는 건 추리소설의 범인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아파트 생활은 점점 더 메마르고 건조해지는 한국인들의 삶의 모습이다.

이런 사막 같은 아파트 생활에 물을 주고 꽃을 피워 '에덴동산'을 만든 곳이 있다.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참이슬아파트. 1999년 입주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이곳 역시 여느 아파트와 다르지 않았다. 944세대 3600여명이 살고 있는 이 곳은 다양한 연령층에 젊은이들이 조금 더 많다. 하지만 전형적인 도농복합지역에 위치하다보니 주변 자연환경은 흠잡을 데 없지만, 문화센터나 대형마트를 가려면 차를 타고 10분 이상 가야 하는 등 빈약한 '문화인프라'가 문제였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 이 곳이 해마다 20여개 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지역 주민들의 평생학습을 모토로 출범한 '마을학교' 덕분이다.
  
◆입주 9년 만의 결실 '마을학교' 건립, 그리고 존폐 위기


참이슬아파트는 2008년 3월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디뎠다. 아파트 관리동 지하 1층에 330㎡(100평 상당) 규모의 마을학교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국내 최초다.


문화와 교육,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목말랐던 입주민에게 마을학교 건립은 '단비'와도 같았다. 마을학교가 생기자 주민들은 너남없이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 한 입주민은 가족체험 프로그램인 '들꽃농원' 운영을 위해 자신의 땅을 무상으로 내놨다.


자격증을 가진 주부들은 동아리로 뭉쳤다. 야시장이나 마을 노래자랑이 전부였던 행사는 가족노래자랑, 마을학교프로그램 체험과 무대발표, 주민대항 단체게임 등으로 다양해졌다.



엘리베이터 문화까지 바뀌었다. '웃으며 타고, 안에서 소통하며, 내릴 때 인사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골목문화, 책나눔, 자원재활용, 아나바다운동 등도 마을학교 이후 생겨난 풍속도다.


그러나 잘나가던 마을학교에 위기가 찾아왔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비용 문제를 이유로 마을학교 무용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은 입주자대표회의 간부들이 찾아와 마을학교 효용성을 문제 삼더군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마을학교 운영비를 대는 데 부담스럽다는 것이지요. 특히 마을학교 자리를 일반에 임대할 경우 부수입이 쏠쏠한 데 굳이 마을학교를 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양복근 마을학교 교장의 회고다. 그는 마을학교 무용론이 제기될 때마다 입주민들을 설득했다. 양 교장이 마을학교에 각별한 애착을 가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하중동이 고향인 토박이다. 1999년 참이슬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만해도 하중동은 자연부락이었다. 그러나 택지개발로 삶의 터전이 갈아 엎어지고 삭막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따뜻한 마을'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2007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마을학교 구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8년3월 아파트 입주 9년만에 대한민국 최초의 마을학교가 출범했다.


◆마을학교 '성장'…지자체들 벤치마킹 쇄도


우여곡절을 겪던 참이슬 마을학교는 2012년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우선 보조금이 지원되는 시흥시 민간단체로 등록된다. 마을학교의 민간단체 등록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다.


참이슬 마을학교는 이어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에 성공사례로 보고되면서 사업화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경기도는 참이슬 마을학교에서 '모티브'를 얻어 골든트라이앵글 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은 시흥시 권역별로 마을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은행동 대우아파트(꿈샘 마을학교), 정왕동 보성아파트(생명순환 마을학교), 능곡동 주공임대아파트(휴먼아이 마을학교), 매화동 일반주택(희망센터 마을학교) 등 4개 권역에 마을학교가 생겨났다.


참이슬 마을학교를 포함해 5개 단지, 5000여세대를 아우르는 매머드급 '마을학교 벨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참이슬마을학교는 이 사업으로 매년 1800만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올해 지원받은 예산은 1840만원이다. 당초 지난해 말 예산지원이 끝났으나, 성공적 마을학교 운영 사례로 평가돼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참이슬 마을학교의 성공은 국내 지차제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이 곳을 찾은 지자체는 21개(도내 12개ㆍ타 지역 9개)로 456명에 이른다. 2013년에는 일본 동경대 교수들이 마을학교를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마을학교는 현재 월 20개 이상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일부 강좌는 대기자들이 몰려 문전성시다.
  
"인근 초등학교의 방과후 강좌나 지역 문화원, 체육센터 등도 있지만 마을학교를 찾는 주민이 훨씬 많습니다. 양질의 맞춤형 교육 때문인 거 같습니다." 허경애 마을학교 교감의 전언이다.


현재 마을학교는 ▲유아(쿠키클레이ㆍ종이접기ㆍ독서놀이) ▲초등생(초등영어ㆍ방송댄스ㆍ전래놀이) ▲성인(핫요가ㆍ한국무용ㆍ영어교실) ▲노인(생활문해교실ㆍ웃음치료) 등 연령대별 맞춤형 강좌로 운영된다.


◆마을학교 '미래를 고민하다'…자립과 공동체복원


참이슬 마을학교는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지자체의 지원 예산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양 교장은 "주민들이 지금처럼 마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해답을 찾고, 어울려 살아간다면 독거노인, 육아 등 사회문제도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마을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국가의 사회문제 해결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고 마을학교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그는 다만 "행복한 마을공동체를 위한 노력은 어느정도 성과를 냈지만 이젠 마을학교가 자립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마을기업,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으로 한 단계 진화해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을학교는 최근 북카페와 독서실을 새로 만들었다. 독서실은 25석으로 주중에는 2명이, 주말에는 1명이 맡는다. 입실비는 1개월 5만원, 1일 3000원이다. 북카페는 8명의 입주민 바리스타들이 돌아가면서 활동하고 있다. 이 곳에는 총 7023권의 책이 구비돼 있다. 모두 자립을 위한 노력들이다.


마을학교는 자립과 함께 지역공동체 복원을 위한 동아리 지원도 확대한다. 현재 마을학교에서 지원하는 동아리는 독서지도강사가 운영하는 '사고뭉치', 한국무용을 배우는 '열린문무용단', 네일아트를 가르치는 '마녀손톱', 청소년 꿈찾기를 돕는 '꿈다리' 등이 있다. 특히 꿈다리는 전국창의인성페스티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김경란 마을학교 코디네이터는 "마을학교는 오전에는 학부모 모임이나 동아리 모임을 하고, 오후에는 방과후 책을 보러 오는 아이들로 북적인다"며 "주말에는 할아버지가 손주를 데리고 와 책도 골라주고 간식을 사주는 모습을 보면서 마을학교가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흥=이영규 기자 fortune@



이영규 기자 fortune@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영규 기자 fort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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