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경제 시간이 없다②]구조개혁,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
4大 구조개혁, 방향은 맞지만…옥석구분 없고 액션플랜 미흡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구조개혁은 한국경제가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가 됐다.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저성장, 저물가가 고착화되는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행로를 바꾸기 위해선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한다.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구조개혁을 꼭 가야하는 길, 우리시대의 미션, 소명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노동, 금융, 교육, 공공 등 4대분야를 필두로 한 정부의 구조개혁 방향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과감하고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단기적 과제와 중장기적 과제에 대한 구분조차 없이 한번에 너무 많은 개혁안을 쏟아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노동개혁, 비정규직 기간연장 vs 이해관계 첨예 진통 불가피=외환위기 이후 18년 만에 대수술을 예고한 노동시장 개혁은 구조개혁의 성패를 가를 키(key)로 평가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눠진 이중구조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일자리 창출과 고용을 통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대책안은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다. 비정규직 사용연한을 4년으로 늘리고 55세 이상 중고령자의 파견노동을 허용하는 내용 등이 골자다. 정부는 내년 3월까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주요 현안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룬다는 목표지만, 개혁 당사자들 간 인식차가 워낙 큰데다 공론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서두르거나 밀어붙일 경우 자칫 파행이 불가피하다.
더욱 큰 문제는 이번 노동개혁이 중소하청기업, 여성, 청년, 고령자, 특수노동직 등 대다수 국민들이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주요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다수가 논의과정에서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향후 10여년을 내다보고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할 과제들이 공론화되지 못한 채, 논의시일까지 못 박혀 있는 셈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영자와 비정규직, 여성, 청년 등 근로자 다수가 노사정위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과연 3월까지 5대과제에 대한 합의를 이룰 수 있을 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사회적 공론화가 덜 된 상태에서 합의를 서두르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개혁, 핀테크 규제개선 등 돈맥경화 푼다 vs 官治부활ㆍ좀비기업 양산 우려=돈이 돌게 하지 못하는 후진적 금융 시스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개혁대상으로 손꼽힌다. 앞서 마크 파버 마크파버리미티드 회장은 "한국 금융이 머지않아 일본처럼 내수용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은 보신주의 타파와 경쟁촉진으로 요약된다. 이를 통해 실물로의 자금순환을 촉진하겠다는 의도다. 세부적으로는 핀테크 등 신산업 육성, 업권간 칸막이 완화, 사모펀드 규제 개선,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 등이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규제개혁 과제 중 금융부문의 체감도가 높았다고 보고 올해는 2단계 규제개혁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금융개혁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수조원의 유보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금융지원을 독려해 기업에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오히려 '좀비기업'들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형은행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금융의 실태와 관치금융, 낙하산인사 등이 개혁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금융을 별개의 산업이 아닌,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며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 근본원인들을 개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교육개혁, 가을학기제 도전적 과제 vs 근본적 개혁은 없어=교육개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학제개편이다. 정부는 1961년 이래 5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봄학기제(3월 신학기제)를 가을학기제(9월 신학기제)로 변경하는 학제개편을 공론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가을학기제 도입을 공론화해야한다는 입장이지만, 교육계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학생들을 위해 학기제를 변경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의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현장에서 가장 문제점으로 꼽히는 인력수급 불일치(인력미스매치), 과도한 대학진학률, 교권 추락 등은 개혁과제에 구체적으로 포함되지 않아 구조개혁이라는 표현이 무색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나마 인력미스매치의 경우 산업계의 인력수요를 반영해 대학의 정원을 조정, 불일치를 완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기는 데 그쳤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근본적으로 구조를 바꾸는 조치가 제대로 포함되지 않았다"며 "좀 더 과감하고 혁신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학력중심의 교육기조를 인성중심으로 전환하고 교육정책이 지나치게 수요자, 학습자 중심이라는 점을 교육개혁에 함께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개혁, 사학ㆍ군인연금 개혁철회로 개혁 추동력 약해져=공공부문 개혁의 선두에 선 공무원 연금개혁은 가장 눈앞에 다가온 개혁이자, 올해의 가장 큰 쟁점이다. 직접적 이해관계자가 많고 이해관계가 비교적 단일하다는 측면에서 '밥그릇 싸움'으로 번져가는 모양새다.
역대 정부에서 번번이 구조개혁을 외치면서도 실패를 되풀이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공공기관 개혁을 시작으로 국민연금 운용체계를 뜯어고치고 민간투자사업을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공공부문 개혁을 정부가 끝까지 완수할 수 있을지 우려도 제기된다. 앞서 정부가 2015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혁 계획을 밝혔다가 하루 만에 백지화한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박 연구위원은 "직접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연금개혁안이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마련되는 것이 가능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4大개혁 주제만큼 앞길도 험로=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4개 부문 모두 오랜 시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다 우리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분야기 때문이다. 대타협을 말하긴 쉽지만 공론화하고 최종합의까지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장기적 차원에서 구체적 액션플랜을 갖고 다가가야 하지만 현재 정부가 이 같은 세밀한 계획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방향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올해 꼭 달성할 과제와 중장기적으로 전략을 세워 끌고 가야 할 것이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4개 부문에 대한 실마리를 푸는 접근방식도 각기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 더욱이 대외적으로는 미국 금리인상, 엔저, 중국의 성장둔화, 우크라이나발 지정학적 리스크, 유로존의 디플레이션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대내적으로는 가계부채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구조개혁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그러면서 "모든 분야의 개혁을 한꺼번에 추진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단계별로 하나씩 추진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교수(경제학)는 "대외 불확실성을 감안해 통화정책 등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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