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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청정국’ 두 얼굴, 집행은 無 구형은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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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이준석 김형식 등 사형 구형…올해 유난히 많았던 충격적 사건과 사형 논란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박준용 기자] 1997년 12월30일은 어떤 이들에게는 특별한 날이다. 질병이나 사고, 자살이 아닌 다른 이유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그들의 죽음은 다음날 아침 조간신문 기사로 실렸다. 무려 23명이다. 그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가족들에게는 반갑거나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집행 대상이 된 이들이다. 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17년이 흘렀다. 그날 이후 국가의 형벌로 삶을 마감한 이들은 한 명도 없다.

한국은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가’로 불린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사형은 현재진행형이다. 사형집행만 되지 않았을 뿐 현행 법에도 법정에서도 ‘사형’은 엄연히 실체로 존재한다.


올해는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고, 사형 판결을 둘러싼 논란도 뜨거웠다. 대표적인 사례는 세월호 대형참사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 이준석 선장이다. 검찰은 그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다.

현직 서울시의원의 ‘살인교사’ 파문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안이다. 검찰은 김형식 서울시의원에게도 사형을 구형했다. 울산 계모사건은 수많은 사람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40대 박모씨도 사형을 구형받았다. 군 검찰은 28사단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모 병장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사형 청정국’ 두 얼굴, 집행은 無 구형은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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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법정에서는 특정 범죄혐의가 있는 사람에게 사형이 구형된다. 검찰의 사형 구형은 형법에 의한 처분이다. 형법에는 법정형으로 사형 처분을 내릴 수 있는 죄목이 나와 있다. 국가보안법이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도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는 죄목이 나와 있다.


이준석 선장이나 울산 계모의 행위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힘을 얻었다. 한국에서 사형제가 존치하고 있음에도 집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도 터져 나왔다.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이런 상황이 가장 곤혹스럽다. 법조계 안팎에서 사형제 폐지를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다가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는 대형 사건이 터져 나오면 ‘사형 집행론’이 단숨에 여론을 이끈다. 여론의 분위기에 따라 형벌이 결정될 수는 없다.


법원이 검찰의 사형 구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이준석 선장은 1심에서 징역 36년을 선고받았고, 김형식 시의원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심 형사사건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2011년 1건, 2012년 2건, 2013년 2건에 불과하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올해 서울중앙지법의 1심 형사사건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법원이 누군가를 봐주기 위해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원은 보다 엄격한 판단의 잣대를 통해 형량을 정한다. 때로는 국민 법 감정에 비해 낮은 형량이 선고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검찰은 ‘정의의 수호자’, 법원은 ‘정의의 외면자’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사형 청정국’ 두 얼굴, 집행은 無 구형은 有


‘사형’은 두 얼굴을 지닌다. 사형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검찰의 구형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새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으로는 사형제 폐지 국가지만 법적으로는 사형제가 유지되고 있다.


한마디로 어정쩡한 상황이다. 형사소송법 제465조는 ‘사형집행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고 돼 있지만 사형을 확정 판결 받은 뒤 10년 이상 대기하는 사형수들도 있다.


유병철 인천구치소장은 자신의 논문에서 “사형수는 생명박탈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수시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는 불안한 생활을 계속해 왔다”면서 “최장 20년이 지난 사형수를 집행한다면 생명박탈 이외에 그동안 집행 대기의 고통까지 부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형제를 둘러싼 현재의 상황은 어떤 형태로든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형제가 필요한 제도인지, 실효성이 있는 제도인지, 위헌 요소는 없는지 꼼꼼한 점검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형제 폐지국가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국의 상황에서 외국 사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도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유럽 등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들도 폐지 전까지는 존치 여론이 더 높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에 대한 결정을 국가에 위임하는 게 옳은 일인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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