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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아 주저앉은 제자, 일으켜서 1순위 만든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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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안혜지, 여자프로농구 전체 1지명으로 KDB생명 입단…신체조건에 좌절하다가 김화순 코치 지도에 마음 잡아

키 작아 주저앉은 제자, 일으켜서 1순위 만든 스승 여의도 63컨벤선센터에서 11일 열린 여자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구리 KDB생명에 지명된 안혜지(왼쪽)가 스승인 김화순 동주여고 코치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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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 부산에 다다른 열차. 금의환향이다. 가족은 통닭을 시켜놓고 기다렸다. 그들에게 비단옷 대신 KDB생명 유니폼을 자랑스럽게 건넸다. 무엇보다 또래 선수들 가운데 가장 먼저 프로에 입성했다. 서울 여의도동 63컨벤션센터에서 11일 열린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신인드래프트. "KDB생명은 전체 1순위로 안혜지(17·동주여고)를 지명합니다." 주인공은 안세환 감독(48)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지난해 봄부터 일지에 적어온 목표였다. "키 때문에 몇 번이나 농구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런 날이 오네요. 꿈만 같아요."

WKBL 코트에 땅콩 가드가 등장한다. 신장 163㎝. 역대 1순위 선수 가운데 가장 작다. 현 리그 최단신인 청주 KB의 심성영(22ㆍ165㎝)보다도 작다. 하지만 작은 고추가 매운 법. 탄탄한 기본기에 화려한 볼 재간을 갖췄다. 빈 공간을 찔러주는 패스도 일품. 이미 청소년대표팀에 다섯 차례 뽑히며 기량을 인정받았다. 김화순 동주여고 코치(53)는 "발이 빠르고 패스도 정확하지만 특유의 다부진 수비로 프로선수들을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기량은 세계무대를 뛰면서 일취월장했다. 김 코치는 "외국의 장신 가드들과 부딪히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파악했다. 휴식보다 운동기구를 더 찾는 선수"라고 했다. 안혜지는 "장신 가드들이 스피드까지 좋으니까 오기가 생겼다. 그동안의 스타일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 출발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전까지 그는 패스 위주로 경기를 뛰었다. 상대 수비를 따돌리고도 슛을 망설이거나 미룰 때가 많았다. 이제는 다르다. 적극적으로 골밑을 파고든다. 외곽에서 찬스가 나면 과감하게 3점슛을 쏘고, 리바운드 경쟁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이미선(35ㆍ용인 삼성) 언니가 리바운드를 많이 잡잖아요. 그만큼 코트를 부지런히 뛴 결과 아닐까요." 안혜지는 러닝 등으로 체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단단한 체구를 유지한다. 동주여고에 입학했을 때부터 기본기를 닦는 데 충실했다. 작은 신장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프로에 데뷔할 줄 알았다면 대신초교 시절 잠을 푹 자고 탄산음료나 라면을 먹지 않았을 텐데." 그는 "중학교 때까지는 키가 작아도 통했는데 고교에 진학하면서 경쟁자들이 한꺼번에 커지니까 경쟁력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안혜지는 김 코치의 작품이다. 우리 여자농구의 전설. 박찬숙(55), 성정아(49) 등과 함께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합작했다. 당시 경기당 16.8점으로 득점왕에 올랐다. 미국 험볼트대학에서 농구를 하는 딸 신재영(22)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시애틀로 떠났던 그는 모교의 러브콜을 외면하지 못하고 지난해 1월부터 동주여고 선수들을 맡았다. 김 코치는 안혜지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공을 다루는 재주나 센스가 탁월했어요. 그런데 연습을 충분히 하지 않더라고요. 알고 보니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어요. 혼을 낸 다음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죠." 호랑이 같은 스승은 힘들 때 가장 먼저 찾는 버팀목이다. 김 코치는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제자의 이름이 불리자 감격했다. 안혜지는 스승에게 약속했다. "선생님, 꼭 성공할게요. 우리 파이팅해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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