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낱말의 습격]역사와 스토리의 싸움(202)

시계아이콘01분 01초 소요

헤로도투스가 '히스토리아'를 쓸 때,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과거에 관한 기록들이 팩트에 근거하지 않고 상상과 창작에 의지하여 사실들을 마구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스토리가 역사를 삼켰기에 헤로도투스는 난무하는 스토리들 속에서 팩트들을 꺼내서 삼엄한 진실의 정신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일리 있는 생각이며 중요한 방향 전환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상황에서 필요한 인식이었을 수는 있어도, 반드시 옳은 생각은 아닐 수 있다. 그는 팩트에 대해 경직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팩트는 일의적이고 고형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그는 간과했다. 언론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나는, 그것을 깊이 실감해왔다. 팩트는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아니라, 입장과 관점의 문제이며, 해석의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는 점 말이다. 관점에 따라 같은 팩트가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고, 그 의미가 전혀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날마다 발견한다. 물론 그것이, 팩트를 추구하는 일의 중요성을 덜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팩트를 맹신하는 것보다 그것이 지닌 관점의 측면을 살피는 것이 지혜롭다는 얘기일 뿐이다.

지나간 일의 경우, '팩트'는 더욱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지경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의 맥락들이 지워지고, 또 건망증과 기억의 누락이 개입해 '팩트'들은 이미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어려울 만큼 성긴 형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헤로도투스를 입에 올리며, 팩트와 팩트 사이에 숨어버린 '팩트'들을 결코 복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는 학자가 아닌 이야기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야기꾼들이 그 중간을 메우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고 치졸한 대중적 관심의 항문을 닦는 거라며 비난하여 스스로의 학문적 고결을 유지해왔다.

물론 이야기꾼들이 왜곡하고 어지럽혀온 역사적 사실들이 왜 없겠는가. 아니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학자들은 그 왜곡과 역사적 팩트의 혼선들을 치료하는 것 이상으로, '망각의 심연'을 복원하려는 노력 전부를 비웃어온 혐의가 있다. 이 점도 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