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낱말의 습격] 참외는 참 외롭다(197)

시계아이콘01분 16초 소요

김서령선생님 원두막집에 갔다가 맛있는 참외 얘기를 읽는다. 맛있다 함은, 여물 씹는 소처럼 오래 우물거릴 수 있는 거리였단 얘기다. 어린 시절 나는 천천히 반추하면서 눈을 꿈벅이는 저 순한 짐승을 보면서, 영혼이란 걸 생각한 적 있다. 목에 매달린 핑경 소리는 생각의 음표같았다. 근데, 참외 얘기가 왜 우형(牛兄) 얘기가 됐을까.


참, 외. 두 글자를 소가 여물 씹듯 씹는다. 瓜와 melon과 '외'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기발함이 재미있고, 그것의 참외의 생리로 연결되는 게 기묘하다. 오래 전 누군가가 참외꼭지 위의 줄기와 잎을 보고, 문득 외로움을 생각해냈을까. 그 외로움을 이름에다 넣을 생각을 한 사람이라면, 그 또한 꽤 외로웠겠다. 제 처지가 그렇지 않고서야, 무심한 사물의 사정이 그렇게 감정이입될 리 없다.

우리가 김서령답다, 혹은 빈섬스럽다,라고 우스개로 말하듯, 참외도 그런 뒷말을 붙여준다면 '롭다'를 붙여주는 게 그럴 듯 하다. 참외롭다. 참외가 있다는 건 그렇지 않은 외가 있다는 의미이다. 어린 우린, 오이를 '물외'라 그랬다. 이때 붙는 '물'이란 가짜며 엉터리며 단맛이 영 부족하다는 뜻이다. 오이는 외롭지도 못했다. 물외가 나오니 생각난 건데,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이 현대 미국소설을 강독하는 시간에, watermelon을 참외로 착각하셨다. 참외가 피처럼 붉다고 하니 얼마나 기이한 문장이냐고 열변을 토하시는데, 그걸 지적해드릴 수도 없고 입은 근질근질한데 참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피처럼 붉은 참외라. 그러니까 교수님은 워터멜론을 그야말로 '물외'로 읽은 셈이다. 그 열강에 못을 박으며 "수박인데요"라고 누군가 말했다면, 그분은 참 '외'로웠을 것이다.


외롭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내게는 긴 목이 떠오른다. 목선의 서늘함이 외로움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또 내게는 그 목에 닿는 바람결이 떠오른다. 목선을 따라 흐르는 바람의 감각, 그게 또 왜 외로움인가. 외롭다는 말을 들으면, 죽기 전 조병화 시인이 적어줬다는 '그래 얼마나 외로운 혼자이요?"라는 말이 떠오른다. 외롭다는 말을 들으면 요의(尿意)가 충만한 채 다급하게 해우소를 찾는 시선이 떠오른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아무리 귀찮고 번거롭고 불가능하더라도 나 스스로 해야하는, 오줌 누는 일은, 내 외로운 살이의 진상을 만나게 한다.

어디 참외만 외롭겠는가. 모든 존재는 평생 저주같이 부여받은 그 고립의 몸을 잊으려 그토록 관계를 갈망하고 그토록 소통을 꿈꾸려는 것 아니겠는가. 덩그라니, 혹은 동그마니, 참외가 하나 앉아있다. 그 수많은 참외들의 참 외로움, 그걸 따뜻이 살필 수 있는 눈만 있더라도, 그는 조금, 덜 외롭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