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멸종돼 가는 동식물들만큼이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소수 언어들이다. 지난 500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의 언어들 중 거의 절반가량이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소수 언어의 사멸은 이미 심각하다. 게다가 그 소멸 속도는 더욱더 빨라질 것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100년 안에 전체 언어의 90%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한 언어의 소멸은 언어의 죽음을 넘어서 한 세계의 죽음이다.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이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를 통해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이들이 이룩한 세계의 사멸이다.
이 같은 언어의 위기, 결국은 그 민족의 위기 상황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말과 글이 그 같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에 대해 새삼 감사를 드리게 된다. 사용자 규모에서 세계 상위 15개 언어에 들어갈 정도의 언중(言衆)이 돼 있는 한국인은 최소한 언어의 세계에서는 굳건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아니 '안전'을 넘어서 한글은 세계로 수출까지 되고 있다.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을 만큼' 쉬운 한글은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들에게 값진 표현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한글에 의한 한류(韓流)'를 보면서, 또 한글에 쏟아지는 세계인들의 찬사를 들으면서 과연 우리 스스로가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지 나는 의문이 든다. 홀대와 왜곡과 오용에 시달리는 우리말, 글의 처지를 생각할 때 우리 자신이 우리말과 한글에 대해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적잖은 국어학자들은 우리말, 글을 '병든 언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집집마다 두세 권씩 갖고 있는 영어 사전에 비해 국어사전은 주변에서 찾아보기도 힘든 현실에서도 우리의 말과 글이 놓여 있는 초라한 형편이 드러난다.
국경일로 지정된 뒤 두 번째 맞는 한글날. 우리는 한글이 1446년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할 듯하다. 568년 전 한글의 반포는 한글 창제의 완료가 아니라 시작이었을 뿐이다. 이 말과 글을 잘 키우고 발전시킴으로써 우리는 끊임없이 한글을 창제해야 한다.
이 같은 자성과 다짐은 다른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언어생활 선도의 일각을 맡아야 함에도 우리말, 글 왜곡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는 신문을 만드는 나 자신부터의 반성이다.
이명재 기자 prome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