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가정을 해보자. 한 지방 소도시에 쌀가게가 세곳 있다. 이들은 서로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게릴라식 가격경쟁을 펼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쌀가게들이 경쟁을 멈추고 다 함께 쌀값을 비싸게 팔기로 합의한다면?
이것은 전형적인 '가격담합'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있는 여러 국가들이 이런 식의 담합에 대해서 엄중한 처벌을 가한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시장의 가격담합을 부추긴다면 어떨까.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단말기 가격을 통일하겠다며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을 내놨다. 누구는 싸게 사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일을 없애기 위해 모두가 '비싸게' 살 수밖에 없는 신개념의 규제를 선보인 셈이다.
정부가 내놓은 단통법은 시장에서 일종의 가격 담합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3개 회사가 나눠가지고 있는데 가격경쟁(보조금 경쟁) 수단이 막히다 보니 결국 모두가 다 비싸게 파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구는 5000만명, 이중 스마트폰 가입자는 4000만명. 시장은 이미 포화다. 15년째 출산율 1.5명의 초저출산을 이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이동통신 이용자의 순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통사들이 게릴라식 보조금 폭탄으로 타사 고객들을 빼앗고 2년 약정으로 묶어두는 소모적 경쟁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단통법으로 인해 이런 경쟁은 이제 사라지게 됐다. 앞으로 타사 고객을 뺏어오기 힘들어졌지만 그 대신 내 고객을 빼앗길 위험도 적어졌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시장지배 구도는 한순간에 뒤집기 어렵다. 영업정지의 위험을 무릅쓰고 보조금 경쟁을 벌이느니 이참에 마케팅비도 줄이고 내 밥그릇이나 잘 챙기며 살기로 하면 이통사들에게도 크게 손해는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손해는 누가 보게 될까? 가격을 정부에서 제한하고 공급자들은 경쟁을 멈췄다. 당연히 시장 가격은 소비자들의 비용 부담을 높이게 된다. 지금 당장에 휴대폰을 신규가입하거나 번호이동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출시된 지 1~2년 밖에 안됐지만 할부원금을 한 자릿수로 팔던 폰들은 이제는 볼 수가 없다.
공급자들끼리 가격 통제권을 나눠 갖는 것을 '담합'이라고 부른다. 지금 이동통신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정부 주도하의 '담합'이다.
단통법으로 통신비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신비 인하는 이통사들에게 있어 마지노선이다. 요금을 내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업계가 본격적인 치킨게임에 돌입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통사들이 통신비 인하라는 카드를 마지막 순간까지 꺼내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밑그림이 시장에 등장하기 까지 세월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그동안 담합 아닌 담합 때문에 소비자들은 가격 통제권을 이통사들에게 빼앗긴 채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 소비자에게 이로운 시장은 가격 통제권이 소비자에게 있을 때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이었을까.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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