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대통령에 대한 모독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어제(16일) 박근혜 대통령이 한 이 말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정확히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국가의 위상 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적잖은 이들이 이 발언을 듣고 "전제주의ㆍ독재의 섬뜩함을 느낀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짐은 곧 국가'라는 프랑스 절대왕정 시절 루이14세의 발언이 연상된다는 이들이 많다. '대통령=국민=국가'를 동일시하는 사고 방식 자체가 다원화된 현대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구성원들이 느끼는 정서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설마 박 대통령이 전제주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솥뚜껑' 보고 놀란 자라의 심정으로 여기고 싶다.
대통령은 아마도 최근 설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대통령 연애' 발언을 비롯해 일본 산케이신문의 기사, 조선일보의 칼럼 등에서 언급된 '세월호 사고 발생 직후 7시간 행적 의문'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들을 '모독'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대통령에게 모독을 주는 막말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역사가 짧다. 70~80년대 군사 독재 시절엔 대통령 비판을 잘못했다간 곧바로 '지하실'로 끌려가던 시절이었으니 '막말'은 당연히 생각도 못했다. '문민 정부' 시절이나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 때문에 비난ㆍ비판은 오갔어도 '막말'은 드물었다.
그러다 87년 민주화의 열매가 무르익어 드디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도 '막말'이 쏟아지게 된 때가 바로 '참여정부'다. 사실 박 대통령은 참여 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막말로 가장 큰 수혜를 본 야당 정치인 중 하나였다.
우리 국민들의 뇌리엔 아직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4년 8월 노 대통령에게 온갖 험악한 막말을 쏟아 붓는 '환생 경제'라는 연극을 보며 박장대소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때 노 대통령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막말 세례에 "대통령을 욕해서 국민들의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기꺼이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이젠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과 비판을 '모독'이라고 하고 있다.
또 사실 이번 '모독'은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본인에게 제기되는 '7시간 미스터리' 등의 본질은 사실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 따위가 아니라 위기 대응 시스템의 문제인데도, 오로지 그것을 '사생활에 대한 의혹'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진즉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받았다면 쓸데없는 세간의 구설수에 올랐을 리도 없지 않은가.
대통령에 대한 풍자와 비판, 심지어 비난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걸 갖고 대통령이 공식 석상인 국무회의에서 '결기'를 담아 '모독'이라고 일일이 맞받아친다면, 국민들의 답답증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대통령은 안 그래도 취임 후 공개 기자회견과 질의응답도 한 번 하지 않아 '소통'이 안 된다는 비판을 듣고 있지 않은가. 자신에게 비판적이거나 불편한 말을 듣더라도, 그것이 바로 자신을 선거로 뽑게 한 민주주의 제도의 강점임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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