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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설득력 잃은 檢의 ‘사이버감시’

시계아이콘01분 19초 소요

[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검찰은 정무적인 감각을 지닌 기관이다. 복잡한 정국의 흐름을 읽어내는 '눈'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탈을 부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권력의 의중을 지나치게 살펴 긁어 부스럼을 자초하는 경우다. 최근 법조계 안팎의 쟁점으로 떠오른 검찰의 '사이버 감시' 논란은 복기(復棋)가 필요한 사안이다.

대검찰청은 지난 18일 '사이버 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단' 범정부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안전행정부, 방송통신위원회, 경찰청 등 정부기관은 물론 네이버, 다음, 카카오톡, 네이트 관계자들까지 소집한 자리였다.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허위사실 유포사범을 상시 적발하겠다. 게시물 전달을 통한 확산 기여자도 최초 게시자에 준해 엄벌하겠다."

검찰이 대책회의를 통해 내놓은 '사이버 감시' 방안이다. 검찰이 강조한 단어는 '엄정 대응' '엄벌' '무관용 원칙' '적극적 구속수사' 등이다.


검찰의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왜 이 시점에 그런 발표를…"이라는 반응을 불러왔다. 검찰의 움직임은 그 이틀 전의 국무회의와 관련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모독'과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검찰은 대통령 발언이 나온 지 이틀 만에 법무부 장관 지시에 따라 범정부 대책회의를 열었다.


검찰의 행동은 기민했지만, 청와대와 검찰 모두에게 부담을 안겨줬다. 검찰이 대통령 '심기 경호'에 수사력을 쏟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검사와의 대화'에서 꼿꼿한 자세로 결기를 보여줬던 검찰의 모습과 거리가 먼 풍경이다. 국민이 검찰에 바라는 것은 권력과의 적당한 거리감이다. 권력과의 밀월관계는 검찰의 정치도구화 우려와 편향성 논란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이버 감시 대책도 논란의 대상이다. 말은 거창했지만 내용은 속빈 강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행계획이 너무 허술했기 때문이다. 허위사실 판단을 법관이 아닌 검사가 한다는 것인가. 게시물 즉시삭제는 누가 어떤 권한으로 한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검찰은 카카오톡과 트위터 등 사적인 공간은 모니터링 대상이 아니라면서도 공개된 인터넷 게시판은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게시판을 들여다보면 의사표현은 위축되고 결국 '자기검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독일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은 검찰의 '사이버감시' 발표 이후 모바일 '앱' 시장에서 특수(特需)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평범한 시민들이 한국 메신저를 떠나 외국 메신저를 찾는 '사이버 망명'을 선택할 것이라고 예측이나 했을까.


자신의 글을 검사가 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누가 마음 놓고 견해를 밝히겠는가. 정부에 비판적인 견해라면 의사표현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이버 긴급조치' '사이버 공안시대' 등 이번 사건을 꼬집은 신조어는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탁월한(?) 정무적 감각을 뽐내려다 탈이 난 것일까. 검찰의 기민한 대응은 "내 사생활을 검찰이 엿보려 한다"는 여론의 동요로 이어지고 말았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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