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왼손잡이' 배려로 전 세계 인구 15% 잡기 나서
세계 명품 시계업체들 긴장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 권용민 기자, 최동현 기자] 애플이 지난 9일(현지시간) 발표한 애플워치는 기기를 돌려서 착용하면 왼손잡이용으로 변신한다. 지금까지의 시계가 오른손잡이용으로만 출시돼 오던 일종의 관행을 깬 것이다. 이날 워치가 공개된 직후 고급 시계 업체들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단순한 전자 기기를 넘어서 고급 시계 산업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애플워치의 정식 출시가 내년 초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애플의 발표는 다소 이른감이 있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의 경우 애플은 보통 공개일과 출시일 사이에 2주의 간격을 뒀다. 이날 함께 공개된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의 경우에도 12일 예약 주문에 돌입해 오는 19일 전 세계 9개국에서 동시 출시된다. 4개월 후에나 판매될 애플워치를 특별히 일찍 공개한 것은 무엇을 노린 것일까. 이에 대한 4가지 가설이 제기됐다.
◆애플만의 웨어러블 앱 생태계 조성
글로벌 조사 기관인 IHS의 랜 포그 선임 연구원은 "스마트 웨어러블 기기가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개발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3자 앱 개발자들을 확보하는 것은 애플 전략의 핵심이었다. 이는 애플워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많은 기기를 판매하려면 애플만의 앱 생태계가 꼭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애플은 헬스케어, 스마트홈 등을 아우르는 정보기술(IT) 인프라 개발자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를 쓰는 개발자들을 애플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도 펼치고 있다. 앞서 프로그래밍 언어 '스위프트'를 내놓은 것도 여러 개발자들이 애플로 넘어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번 행사는 놓치기 아까운 '기회'
또 다른 가능성은 이번 행사가 '버즈' 만들기에 최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날 일부 지역에서는 애플 행사의 인터넷 생중계 방송이 불안정해질 정도로 접속자가 몰렸다.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됐던 만큼 입소문 효과는 톡톡히 볼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9월은 사람들이 쇼핑을 가장 많이 하는 12월과 불과 3달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연말 경쟁사의 스마트워치를 사려는 대기수요자 일부를 애플쪽으로 끌어오려는 의도도 포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애플워치가 실제로 판매되기 까지는 아직 많은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무선충전 기능이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배터리 수명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품의 크기와 운동 관리, 진동 알람기능, 유비쿼터스 등 기능을 이용하면 실제로 하루 이상 구동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다. 또 디자인은 고급스럽지만 외부 충격에 얼마나 견딜지 내구성도 전혀 증명되지 않았다. 디스플레이에 사파이어 글래스를 적용했다고 하더라도 흠집에 강할 뿐 아이폰처럼 외부 충격에 약할 수 있다. 미국 경영 잡지인 패스트컴퍼니는 "현장에 있던 테크리포터들이 실제 기기를 접해보지 못하고 미리 짜여진 사용자환경(UI)를 영상으로만 본 것은 실망스러웠다"고 평가했다.
◆더 이상 비밀을 유지하기 힘들다
애플 같이 전 세계인의 집중을 받는 업체는 보안 유지가 상당히 힘들다. 애플워치가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면 이미 자세한 생김새나 기능, 스펙 등이 유출돼 만천하에 공개될 것은 자명하다. 일례로 업계는 아이폰6가 최근 발표된 아이폰 시리즈 중 '가장 놀랍지 않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이폰6를 둘러싼 루머들이 대체로 사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께, 둥근 모서리, 모바일 결제시스템 등의 정보들을 이미 소비자들은 알고 있었다.
애플은 워치를 통해 전 세계 인구의 15%, 미국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왼손잡이 사용자들을 잡겠다는 방침이다. 10일(현지시간) 애플 대변인은 "왼손잡이 사용자는 시계를 돌려 위아래 스트랩을 바꿔 끼우면 된다"면서 "왼손잡이를 위한 옵션도 별도로 설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계는 대부분 오른손잡이 위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동안 왼손잡이를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약 5%가 왼손잡이인 우리나라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인 점은 분명하다. 애플이 이런 기능이 공개되자 왼손잡이 사용자들은 "버튼 위치는 바꿀 수 없지만 그래도 훨씬 편할 것 같다"고 반색하는 등 환영하는 분위기다.
애플워치의 등장으로 세계 명품 시계업체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애플워치를 공개한 뒤 스와치그룹, 리슈몽 등 스위스 고급 시계 업체들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스와치의 경우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21% 급락했다. 같은 기간 리슈몽도 7% 내렸다. 이들 주가 부진의 일등공신은 애플워치 등장에 대한 우려다. 애플 제품의 디자인을 맡고 있는 조너선 아이브 부사장은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워치(애플워치의 가칭)가 스위스 시계 산업을 곤경으로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애플워치의 출시로 내년 스마트 손목시계(스마트워치) 시장 규모는 올해보다 300% 성장해 28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캐널리스는 내년 스마트밴드 시장 규모가 2820만대, 베이직밴드 시장 규모가 1500만대가 될 것이라고 10일(현지시간) 내다봤다.
애플워치의 출시가격은 349달러(약 35만8000원)부터로 수천~수만달러를 넘는 최고급 명품 시계들에 비하면 저렴하다. 하지만 애플워치의 가격대는 고급 시계 제조사들의 저가 시계 범위와 겹친다. 스와치그룹만 봐도 저가 시계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달한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권용민 기자 festym@asiae.co.kr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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