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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유체이탈(149)

시계아이콘00분 58초 소요

휴전선 부근의 독수리떼를 구경하러 갔던 날, 비무장 부근의 벌판에서 사람들이 가져다준 소 한 마리를 뜯어먹은 독두(禿頭) 군단이 일시에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새들을 보면서, 그들의 몸 속에 갈기갈기 찢겨 들어있을 소의 몸을 생각했다. 나는 소띠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미련한 아들을 보면서 늘 ‘저런 소같은 넘’이라고 중얼거리셨다. 독수리들의 비상을 보면서 나는 마치 소같은 내 넋이 그 수많은 독수리의 몸이 되어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한 환영을 만났다. 황홀한 유체이탈이었다.


유체(幽體)는 몸에 깃들어있다고 말하는 영(靈)을 표현한 말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괴테 등 옛사람들도 유체가 이탈한 경험의 기록을 남겼다. 2007년 스위스 신경과학자 올라프 블랑크는 가상현실 기법으로 이것을 분석한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싣기도 했다. 초현실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우브(oobe:out of body experience)라 하는데, 유체는 대기를 여행하다가 은줄(생명선)이 몸과 연결되어 다시 들어와 앉는다고 주장한다.

불교의 명상 수행에서 말하는 관(觀)과 반(返) 또한 자기를 이탈한 눈이 마침내 객관(客觀, 남의 눈)으로 자기를 들여다보는 경지를 그리고 있다. 육체적으로 인간의 눈은 신체 상부에 딱 들어앉아 밖으로 나다닐 수 있는 사정이 아니다. 그러나 그게 심안(心眼)이 되면 경우가 달라진다. 실제로 시력을 가진 심안이 자기를 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청천벽력같은 깨달음일지 모른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이 또한 유체이탈일 뿐이다.


그런데 oobe는 엉뚱한 곳에서도 쓰인다. 상품을 개봉하는 순간, 즉 소비자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개봉체험(out of box experience)이다. 이 순간의 느낌이 어떤가를 잘 연구하면 상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착안이 생길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예 ms oobe라는 표현을 특화해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상품의 유체이탈이 아닌가. 인간과 물신이 접신하는 기묘한 포인트. 우리의 물욕들과 탐욕들의 실체는, 사물에 빙의된 영혼의 둔주곡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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