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방(榜)으로 쓰는 '입춘대길'의 뜻은 대략 알겠는데, 함께 쓰는 건양다경은 무슨 의미일까. 가만히 짚어보면 입춘(立春)이란 말도 범상치 않다. '봄에 들다'라는 의미라면 입(入)자를 써야 하는데, 봄을 세운다고 입(立)자를 썼다. 봄을 세우기 전에는 그것이 누워있었단 얘기가 아닌가. 없었던 봄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있긴 있었는데 저 땅 아래 누워있다가 가만히 몸을 일으켜 나타난 것이, 입춘(立春)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창조도 되짚어보면 이미 있던 것들의 재배치이거나 재결합, 혹은 응용인 것을 알게 된다.
그건 그렇고, 건양다경은 더 심오하다. 건양(建陽)이란 양기를 돋운다는 의미이다. 양기는 무엇일까. 그냥 쉽게 말하면 햇살 기운이다. 겨울에도 햇살은 있고 봄에도 햇살이 있는데, 굳이 입춘을 맞아 그 햇살 기운을 돋운다는 뜻은 무엇일까. 여기서 우린 옛 사람들의 '시간'에 관한 사유를 읽어야 한다. 한 해는 왜 한 해이며 한 달은 왜 한 달인가. 1년은 바로 '해'의 순환을 시간으로 번역한 것이며 1개월은 '달'의 순환을 시간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달이 차고 이우는 것이 한 달의 순환이듯, 해가 큰 원을 한번 그리는 것이 바로 한 해의 순환이다. 그 해가 처음 햇살을 낼 때가 언제인가. 바로 동지라고 한다. 1년중 밤(陰)이 가장 긴 동지, 추위의 한 복판. 그 때 일양(一陽, 햇살 한 가닥)이 시생(始生, 태어남)한다. 그때 함께 태어나는 것이 매화의 화정(花精)이라고 한다. 이 꽃은 이날 생의 기운을 얻은 뒤 봄날에 마침내 꽃으로 벙그는 것이다.
입춘에는 그 햇살이 비로소 제 세력을 얻어 튼튼해지는 것이다. 24시간 동안 해가 뜨고 지는 것 말고, 365일을 단위로 큰 해가 뜨고 지는 이미지를 생각해보라. 입춘 때는 마침내 그 햇살이 돋아오르는 때이다. 동짓날은 그 햇살이 산 아래에서 부옇게 동트는 때이다. 큰 해가 돋는 것을 계산하여 그 일출을 기념한 것이 바로 입춘인 셈이다.
햇살이 튼튼해지는 일은, 생명에게는 최고의 축복이다. 이제 모든 것은 생명 속에 들어있는 프로그램 대로 번성과 성숙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러니 경사 밖에 더 있겠는가. 그래서 건양다경이다. 하지만 그 좋은 햇살도 잘못 쓰면, 눈물이 찾아오고 한숨이 들끓을 수 있다. 그러니 좋은 햇살을 좋게 써야 한다. 감사하고 음미하고 북돋우며 겸허하게 써야 한다. 그래야 진짜 경사를 쌓게 된다. 건양다경 네 글자만 제대로 읽어내도, 천하의 경전 몇 개 읽은 것과 진배 없을 것이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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