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시 수업을 받을 때, 방과후 스승을 모시고 하는 창작토론회가 있었다. 각자 시 2편씩을 써와 발표를 하면, 그것을 스승이 코멘트해주는 형식이었다. 코멘트는 소박하고 단순했다. 표현 속에 들어있는 군더더기를 잡아내고, 너무 간결하게 지나쳐버린 대목에 풍부하게 살점을 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깎을 곳은 깎고 드러낼 곳은 더욱 풍만하게 하는, 몸매전략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의 소재라든가,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시의(詩意)라든가, 시가 다다른 시격(詩格)이나 흥취같은 것에는 일절 말씀이 없으셨다. 이에 대해 수업 내내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스승은 어린 시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무엇을 북돋워주고 살려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시인지, 시 중에서도 어떤 것인지 등속의 품평은 않으셨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인들이란 시에 대한 박사가 아니라 시에 대한 행위자들이기에, 반드시 시를 알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춤을 추는 이가 춤의 개념을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이, 건축을 하는 이도 자신의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스승은 이미 시는 되었다 치고, 그 시를 돋우기 위한 퇴고만을 해주신 것이리라.
그건 그렇다 치고, 시에서 군더더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때 잘라낸 말들과 구절들과 문장들이 군더더기였던가. 군더더기였다 하더라도 필요없는 말이었던가. 군더더기라는 개념이 소통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해서 생겨난 것일진대, 시가 소통의 효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군더더기들이 제거되기 전에는 시가 덜 된 것이었다가 이후에는 시가 된 것일까. 군더더기들은 시 속에서는 존재가치가 없는 것일까. 군더더기의 변명에 후해지는 것은, 시가 지닌 기본적인 규율이랄까 미덕을 해치는 느슨함일까.
아침 햇살을 타고 방안을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이나 실밥 한 올이 아름다워보이는 때가 있다. 군더더기는 이미 갖춰져 필요가 없게된 사소한 것들이다. 이른바 군식구요 더덕더덕 겹쳐 붙은 미운 놈이다. 그러나 삶의 진상은 혹은 완전한 아름다움은 저 필요없는 군더더기에 들어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은, 무결의 미학을 만들어내긴 하겠지만, 인간이 지닌 허술하고 어설픈 삶의 진상들을 드러내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깔끔한 것은 때로 얄밉고 야박하다. 더구나 시는 그 스스로가 가끔 세상의 군더더기가 아닌가. 시인 또한 한 시대의 군식구이며 더덕더덕 불요불급의 문자를 덧붙이는 군소리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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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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