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힘과 읽는 힘은 소통의 양대 축이다. 쓸 수 있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 신문사 편집국에는 쓰는 힘과 읽는 힘이 공존해야 한다. 취재기자는 현상을 읽고 사건을 읽고 취재원의 워딩(wording)을 읽어내야 한다. 그가 쓰는 기사는 그 읽은 결과를 표현한 것이다. 읽는 힘은 기자의 중요한 역량이다. 읽는 힘은 관점과 지식과 정리능력과 창의적인 해석과 비전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관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직관력, 통찰력, 자기성찰, 문제의 핵심 읽기, 트렌드와 주변요소 읽기, 배려와 사려, 취재원의 심리적 정황 분석, 집요한 사실 확인의 미덕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제대로 읽어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심플한 진리를 많은 기자들이 까먹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읽어내지 못한 것을 소화되지 않은 채 쏟아낸 기사는 읽기가 괴로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의미있는 소통을 만들지 못한다.
편집기자 또한 읽는 힘과 쓰는 힘을 갖춰야 한다. 편집기자들은 헤드라인을 다는 일에 큰 비중을 두게 마련이라,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편집기자야 말로 읽는 힘이 훨씬 중요하다. 기사를 빠르게 힘있게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좋은 헤드라인이 나올 리가 없다. 기사 속에는 이미 취재기자가 '사실이나 정보'를 읽어낸 결과가 담겨있다. 취재기자가 무엇을 읽었느냐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적인 읽기이다. 하지만 취재기자가 읽은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또한 편집기자가 해야할 '읽기'의 어려움이다. 취재기자는 현장을 읽었을 뿐이지만, 편집기자는 그것이 신문이라는 '세상을 담는 그릇'에 어떻게 의미화되고 구성되고 전시되어야 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때로는 크게 읽고 때로는 세밀하게 읽고 때로는 부정적으로 읽고 때로는 긍정적으로 읽어야 한다. 개별 뉴스로 읽어내야 할 때도 있고 트렌드나 패션, 혹은 사건 흐름으로 읽어야할 때도 있다.
후배의 역량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기사를 읽는 힘이다. 기사 속에 들어있는 뉴스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왜 취재기자가 이 기사를 썼는지, 취재원은 왜 이 이야기를 전달하려 하는지, 그것이 오늘 여기에서 무슨 의미인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안되면, 무엇으로 헤드라인을 달겠는가. 스스로 마음 속에 정리된 뉴스가 아닌데, 어떻게 제목이 정리될 수 있겠는가. 정확하고 창의적으로 읽어내야, 제목이 번득이며 아름다우며 감동적일 수 있다. 레이아웃 또한 뉴스를 읽어낸 뒤에 그것이 제대로 표현되어야 힘이 생기고 생동감이 돋워진다. 읽는 힘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우의 수들을 체험한 뒤에야 생겨나는 내공이며 미립이다. 여기엔 독서력도 중요하며 지식도 필요하며 판단력과 센스와 도덕적 관점, 철학 또한 갖춰져야 한다. 읽지 못하면 쓰지 못한다. 잘 읽는 것은 잘 쓰는 것의 절반 이상을 이룬 것과 같다.
한달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기자는, 불행한 기자이다. 1년에 시집을 한 권도 안 읽는 기자는, 답답한 기자이다. 기사 속에서만 헤드라인을 찾아내려고 끙끙거리고 있는 기자는 한심한 편집기자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표현된 언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간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행간'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과 문제와 의미와 인생과 나를 읽는 것과 같다. 그게 보이지 않으면, 기사를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편집기자는 이 물에서는 가엾은 문맹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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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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