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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나방과 측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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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나방과 측근 이정일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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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이 불 가까이 날면 타서 죽고, 너무 멀면 얼어 죽는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한 나방의 비행 경로는?


이 현학적인 필담을 기업 조직에 빗대면 '권력에 너무 가까우면 쉽게 다치고, 너무 멀면 금방 잊혀진다'쯤 되지 않을까. 이름을 대면 알만한 A 기업 얘기다. 얼마 전 세대 교체가 이뤄져 젊은 오너가 회장에 올랐다. 선친의 가신들이 줄줄이 낙마한 것은 물론이다. 새 측근을 구성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다. 까탈스러운 성품에 비서진이 반 년을 못 버티고 교체된다. 회장 눈 밖에 났으니 한직으로 쫓기듯 밀려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측근'이니 '실세'니 부러워했던 시선들도 이제는 얼마나 안 다치고 오래 버티나 안쓰럽게 바라본다. 얼마 전에는 회장의 미국 생활을 챙길 측근을 새로 뽑았다. 두 명이 최종 문턱에서 경합해 희비가 엇갈렸다. 떨어진 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낙점된 자는 통음으로 밤을 새웠다.


역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벤처 신화에 대한 뒷얘기다. 냉철한 승부사로 알려졌지만 삼국지의 유비 같은 스타일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항구에 있는 배는 배로서 의미가 없다"는 명언을 남긴 달변가이기도 하다. 지인들은 "사람을 다룰 줄 안다. 한 달만 같이 일하면 '빠'가 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측근의 얘기다.

"아들이 20살이 됐을 때 와인바에서 함께 술을 마시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이렇게 소개하는거야. '20년간 기다린 아들과의 한잔'. 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매력적이야."


어느 해인가, 주요 임원들이 참석한 연말 저녁에서다. 푸짐하게 만찬을 즐긴 뒤 헤어질 때 그는 임원들 손에 봉투를 하나씩 쥐어 보냈다. 가족들에게 선물이나 사 주라면서. 봉투에는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0이 7개, 1000만원. 봉투를 열어 본 부인들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이런 수장이라면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며 남편을 닦달하지 않았을까. '내 사람'이라고 판단하면 그는 아낌없이 챙겨준다. 그러니 '나를 따르라'에 반기를 들기가 쉽지 않다. 뜻을 달리하는 것은 '결별'이라고 측근들은 생각한다. 설령 그가 "괜찮아" 하더라도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다.


측근은 공식적인 직함이 아니다. 권력자의 지근거리에서 수발을 들거나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이들을 총칭한다. 그룹에서는 계열사 대표들이 밖으로 드러난 측근이다. 오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고 경영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달하는 그림자 측근들도 있다.


영어의 몸인 오너에게 바깥 얘기를 전해주는 접견인은 실세 중에 실세다. 그들의 입을 통해 오너는 결단의 근거를 마련하고, 그들을 통해 오너의 뜻이 그룹에 전달된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부재 속에 삼성전자가 그룹 재편의 속도를 내는 배경에도 측근들의 충심 어린 조언이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측근이라는 범주에는 조직의 중간 관리자나 핵심 인재들도 속한다. 권력의 궤도에서 함께 공전한다는 점에서. 대학생 취업 선호도 1위 삼성전자에 전설처럼 떠도는 말이 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잘 하는 일이 생기고, 잘 하는 일을 계속 잘 하면,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열정, 능력, 센스, 그리고 애사심은 권력의 궤도에 진입하는 함수다.


다시 A 기업으로 돌아와, 권력에 가까운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다. 지금은 불빛에 잠시 따뜻하지만 자칫 눈 밖에 나면 뒷전으로 밀려 나방처럼 얼어 죽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휩싸이는 것, 이것이 측근의 딜레마다. 그래서 숨을 죽이고 복지부동이다. 타 죽지 않을 만큼, 얼어 죽지 않을 만큼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런 면피성 보고가 오너의 경영 판단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측근이 몸을 사리면 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소통이 막히면 미래는 흑빛이다. 아랫사람의 실수를 눈감아 주고, 실패를 격려해 주고, 반대도 용인하는 리더십이 결국 조직을 키우는 것이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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