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을 통해 군 내 수사와 재판의 문제점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강제추행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고 살인죄 적용을 다시 검토하지도 않은 채로 1심 선고만을 앞두고 지난 5일 재판이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비난여론이 거세지고 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사건으로 떠오르자 국방부는 뒤늦게 가해병사에게 강제추행 혐의를 추가했고 살인 혐의 적용을 재검토하는 방향으로 추가 수사를 벌이겠다고 밝힌 뒤 관할법원도 이전했다.
7일 법조계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군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군 검찰과 군사법원은 범행을 저지른 병사들에게 마땅한 책임을 묻는 데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수사와 1심 재판이 모두 사단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제 식구'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또 사단장 등 군 지휘관의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해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수시로 영향을 받으며, 특별법인 군형법보다 일반형법이 적용되는 범죄가 대부분인데도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 장교가 재판장을 맡는다는 점 등에서 원천적인 제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1심인 보통군사법원은 육군의 경우 사단급 이상 제대마다 설치돼 있고 형사사건만 전담한다. 군 검찰 역시 마찬가지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군 법무관의 경우 대체로 1년차엔 검찰관을, 2년차엔 군 판사를 맡는다. 문제는 검찰과 법원의 업무가 분리되기 힘들다는 것과 실제 수사와 재판에서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장교 등 직업군인의 영향력이 더 높다는 점에 있다.
군 법무관 출신 한 판사는 "한 사단에서 법무실장과 군 판사, 군 검찰관이 사실상 함께 근무하다 보니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법무관이 국선변호인을 맡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군 검찰관은 헌병이 먼저 어떤 병사의 혐의를 포착했을 때 비로소 수사를 벌이는데 지휘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한 사단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입장이다 보니 철저한 수사가 어렵다"고 말했다.
군사법원은 재판관 3인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심판관(재판장)을 맡는 이는 일반장교다. 군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법률전문가가 아닌 장교가 일반 형사사건까지 심리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판결이 선고되더라도 사단장 등 지휘관의 재량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군사법원법에는 '군사법원이 설치된 사단에서 사단장급 이상의 지휘관이 재량에 따라 형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규정돼있다. 사실상 지휘관이 '사면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어 수사와 재판 결과가 한 순간에 뒤집힐 수 있다. 실제 지난해만 33명이 감경권의 혜택을 받았고 이 중 9명은 형량의 절반 이상을 감경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군 법무관을 지낸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지휘관이 재량 감경권을 휘두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우리 사단 식구를 어떻게 엄하게 처벌할 수 있겠느냐'는 식"이라며 "일반 형사사건은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법원에서 진행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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