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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10. '콜드마운틴' 사진 한장으로 지킨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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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10. '콜드마운틴' 사진 한장으로 지킨 사랑 영화 '콜드마운틴'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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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산’이란 저 말에 오래 붙들여 있었다. 콜드 마운틴은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산(해발 1838m)으로, 소설작가 찰스 프레이지어(Charles Frazier)가 살았던 유년의 영산(靈山)이기도 하다. 이 산은 헤이우드 카운티의 피스가 국유림에 속하는 산림이다. (프레이지어의 명성을 드높인 첫 작품 ‘콜드 마운틴’은 1997년에 발표되었고, 6년뒤 유명배우를 총동원한 두시간반 짜리 거작영화로 개봉되었다. 주드 로, 니콜 키드먼, 르네 젤위거, 나탈리 포트만, 필립 세이모아 호프먼, 도널드 서덜랜드 등 쟁쟁한 거물급들이, 치열한 오디션 경쟁을 거쳐 선발되어 상영 전부터 화제를 뿌렸던 작품이다.)

콜드 마운틴은 미국에 실제로 있는 산이지만, 영화는 대개 루마니아에서 촬영했다 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산들은 카르파티아산맥이다. 영화를 감독한 안소니 밍겔라와 제작을 맡은 시드리 폴락은 우연히 5년뒤인 2008년에 의료사고와 암으로 각각 사망했기에, 루마니아의 산을 콜드 마운틴으로 찍은 뜻을 물어보기는 이미 늦었지만, 아마도 저렴한 제작 비용을 고려해 그곳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 들렀던 루마니아, 눈꽃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드라큐라의 겨울왕국인 그곳을 기억하고 있기에, 콜드 마운틴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묘하게 동경이 일어난다.


나그네는 콜드 마운틴으로 가는 길을 묻지만,
콜드 마운틴의 길은 이미 끊어졌다네.
(人問寒山道 寒山路不通).

이 시는 옛중국 당나라의 승려 시인 한산(寒山)이 쓴 ‘제목없는 시(無題)’이다. 우연일까. 저 한산의 시와, 미국의 소설과 영화 ‘콜드 마운틴’의 스토리가 빼닮아있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인생사는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보편성을 띠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영감이 어떤 기묘한 통로로 교감이 된 것일까.


뉴욕 화가 중에 브라이스 마덴(Brice Marden, 1938- )이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자신의 회화에 동양의 정신주의를 표현하고 싶어했다. 문득 한산이란 시인을 알게 되어 물질적 세속을 초월하는 젠(Zen,禪)을 미친 낙서와 같은 그림으로 그려내어 그 화제(畵題)를 ‘콜드 마운틴’이라 붙인다. 한산(寒山)을 번역한 말이다. 마덴이 찾아나선 여정과 프레이지어와 밍겔라의 길이, 저 영화의 곳곳에서 무시로 만나고 헤어진다. 사람을 갈라놓고 길을 어지럽게 한, 맹렬한 추위는 바로 ‘전쟁’이었다. 그것도 내전(內戰. Civil War). 잔혹하고 무자비한 살육이 같은 국가 아래 같은 국민 사이에서 저질러지는, 명분도 희미한 전쟁이 영화 뒤에 드리워져 있다.


시골 목수인 인만(Inman, 주드 로)은 이 마을로 이주해온 목사의 딸 에이다(Ada, 니콜 키드먼)를 본 뒤 첫눈에 반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동네 아낙이 에이다에게 “저 총각에게 주스 한잔을 가져다주면, 아마도 그가 자신의 밭을 쟁기로 갈아줄 것 같다”고 귀띔한다. 마음씨 착한 에이다는 아낙이 시키는대로 했고, 수줍어 말수 적은 인만은, 고맙다는 짧은 말만 남기지만 얼마후 진짜로 밭을 갈고 있다. 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교회의 모임에서, 밖에 서성거리고 있는 인만을 보고는 음료가 담긴 쟁반을 가지고 나온 에이다가 마실 것을 권한다. 남자는 뭐, 맨날 주스쟁반만 들고다니느냐고 슬쩍 핀잔을 주자, “당신과 만나기 위해 핑계가 필요했다”고 에이다는 말한다. 이날의 짧고 달콤한 입맞춤이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의 정수(精髓)였고 전부였다. 전쟁이 일어나고 남부는 북부의 양키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모두 총을 들었다. 전쟁에 나가면서 두 사람은 사진을 서로 사진을 건넸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웃는 채 멈추는 거.” 에이다는 시무룩한 표정의 사진을 주면서 인먼에게 이렇게 말한다. “행복하지 않은 것을 행복한 척 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슬픈 얼굴이 바로 사랑이 흔들고 있는 그녀의 진짜 모습이 아닌가.


[빈섬의 알바시네]10. '콜드마운틴' 사진 한장으로 지킨 사랑 영화 '콜드마운틴'의 한장면



남자는 전장에 나가고 여자는 시골에 남았다. 떠나간 곳도 남아있는 곳도 모두 전쟁이다. 피바람과 광기가 온 대지를 삼킨다. 인먼(Inman)은 ‘남자의 내면’이란 뜻이 풍기고, 에이다(Ada)는 아담(Adam)에서 ‘엠(m)'이 빠져있는 글자인 것은 우연일 뿐일까. 전쟁이 사랑을 갈라놓았지만, 사랑은 다시 그 결합을 위해 치열하게 전쟁과 전쟁을 벌인다. 숨은 것과 잃어버린 것이 서로를 갈구하며 미친 듯 다가간다. 목사 부친을 잃고 전혀 생계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던 에이다에게 씩씩한 여인 루비(르네 젤위거)가 찾아온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익숙한 장면들과 유쾌하게 겹친다. 타라의 스칼렛이 콜드 마운틴에서 부활한 듯 두 여인은 척박한 남부의 남자없는 인생을 개척해나간다. 그녀를 노리는 사내가 늘 맴돌고, 살육과 감시가 일상적으로 벌어지지만, 그녀들은 두려움없이 나아간다. 루비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화해는 그런 삶 가운데서도 인상적인 모티프를 이룬다. 그녀는 미래를 보여주는 샐리네의 우물에 자신을 비춰보기도 한다. 이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어서 오래 마음에 머문다. 여인은 거울을 든 채 우물 위에 두 사람의 팔뚝에 힘입어 누웠다. 거울을 한참 보고 있으니 물결들이 움직이면서 어떤 영상을 비춘다. 인먼처럼 보이는 사람 그림자가 저 멀리서 걸어와 쓰러지고 까마귀들이 주위를 맴돈다. 이건 불길한 것일까, 반가운 것일까.


한편 전쟁터.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 한 남자에게 인먼은 묻는다. 딱 10분만 눈 뜰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자 그는 대답한다. “나는 눈 뜨고 싶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인먼이 ‘세상이 보고싶지 않아서 그러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그 10분 뒤에 일어나는, 헛된 희망에 대한 괴로움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서 그렇다.” 이 대화 속에는 인먼과 에이다의 사랑의 시놉시스가 모두 들어있다. 딱 10분의 사랑 때문에 평생을 이토록 미친 듯이 분투해야 하는 것이 옳은가. 하지만 그는 대답한다. 그래도 눈을 뜨는 것이 옳다. 10분의 사랑일지언정 평생의 사랑보다 못할 것도 없다.
인먼은 전투 중에 목 밑에 큰 부상을 당하여 병실에 누워있다. 간호를 맡은 여인이, 뒤늦게 당도한 에이다의 편지를 읽어준다. 이런 대목이 있다. “요즘엔 당신 생각을 멈출 수 있습니다. 바쁜 농장일이 내 손을 끌기 때문이지요.” 그 말은 무엇인가. 그리운 마음에 내내 시달려왔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후 그는 병영을 탈출한다. 어서 콜드 마운틴으로 달려가 에이다를 만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전장에서 콜드 마운틴까지의 험난하고 위험한 여정이 영화의 후반부를 이룬다. 흑인 신도를 범한 목사가 죄를 숨기려고 여인을 죽이려는 상황에서 그녀를 구하기도 하고, “30달러를 더 주면 저 오두막에서 치마를 올릴 수도 있고요”라고 처절한 제안을 하던 뱃사공 여인이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총알에 죽음을 맞고 마는 그 현장도 목격했다. 또 딸들과 아내를 이용해 탈영군인을 유혹한 뒤 신고해 돈을 챙기는 비열한 사내도 만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젖먹이 아이를 보살피며 근근히 살아가는 여인 사라(나탈리 포트만)와의 만남이다. 그녀는 한밤중에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부탁이 하나 있어요. 내 옆에 누워만 있어줘요.” 인먼이 그 부탁을 들어주자 그녀는 그의 손을 어루만지며 미친 듯이 오열한다. 인먼은 그녀를 꼬옥 안아주며 말을 한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눈길에서 만난다. 칠면조를 쏘려고 총을 들고 달려온 여자. 어느 고마운 할머니의 극진한 치료를 받고 부상을 회복하여 콜드 마운틴으로 달려온 남자. 불쑥 나타난 사내 그림자를 보고 놀란 에이다는 소리친다. “돌아서! 안 그러면 쏜다!” 소리를 지를 수 없는 인먼은 낮은 목소리로 ‘에이다’를 외치다 돌아선다. 그때 그녀가 말한다. “인먼?”


이 영화는 일종의 반전(反戰)영화이기도 하지만, 전쟁을 오래 비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쟁이 남긴 것들, 전쟁이 변모시켜놓은 인간군상들을 말없이 나열한다. 찢긴 사랑이 재결합으로 다가가는 동안, 전쟁에 대한 피로감은 관객에게도 덮쳐든다. “이런 세상엔 하느님도 피곤하실 것...남쪽에서도 빌고 북쪽에서 빌어대니 헷갈려 무슨 일도 할 수 없을 것.” 이런 조크나, “전쟁에서 남는 것은 죽은 남자들과 버려진 여인들 뿐이죠.” 이런 고발들이 도처에 시신처럼 널려있다. 얼마전 상영한 영화 ‘링컨’이 북부의 시각에서 본 정치적인 전쟁을 다뤘다면, 이 영화는 남부적인 관점에서 전쟁 전체의 비극과 상처를 지겹도록 담담히 들여다보고 있다. 영화는 끝났지만 짧은 키스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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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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