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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9. 영화 ‘논스톱’, 9.11과 문자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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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9. 영화 ‘논스톱’, 9.11과 문자테러 영화 '논스톱'의 주연배우 리암 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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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불과 1주일 사이에 항공참사 세 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17일 말레이항공이 격추되었고 23일 대만 푸싱항공 화재사고가 났으며 24일엔 알제리항공이 추락했다. 이로써 올 항공사고 사망자가 680명으로 불었고, 2005년 916명이 사망한 이후로 최악의 해로 기록되게 되었다.


2001년 9월11일 오전 8시 45분 92명의 승객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 AA11편이 뉴욕의 110층 건물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을 허공에서 들이박았고, 18분 뒤에는 65명을 태운 유나이티드 항공 UA175편이 남쪽 건물을 뚫었던 기억은, 새천년 벽두에 세계 최강국가 미국을 덮친 날벼락이었다. 그간 만들어졌던 모든 영화의 범죄와 비극 상상력을 뛰어넘는, 참혹하고 거대한 항공기 자살테러였다. 2014년에 나온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 ‘논스톱’은 9.11 이후에 크게 강화된 항공 보안요원(Federal Air Marshal. 미 항공보안법14조 제2항에 ‘항공운송사업자는 승객이 탑승한 항공기를 운항하는 경우 항공기내에 보안요원을 탑승시켜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의 고독한 싸움을 다뤘다.


뉴욕발 런던행 여객기 기내로 설정한 것은, 9.11의 그림자를 암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랍인 의사 파힘 나시르는, 범인을 헷갈리게 하는 수상한 승객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작위적인 배역이기도 하다. 4만피트 상공에서 보안요원 빌 막스의 휴대폰에 문자가 뜬다. 1억5천만 달러를 당신(빌)의 계좌에 넣을 것, 그러지 않으면 20분 뒤에 탑승객 한명이 죽을 것이며 20분마다 계속 1명씩 죽이겠다는 협박이었다. 이 영화의 특징은, 얼굴없는 범인과 그의 협박을 받는 보안요원이 줄곧 문자메시지를 교환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스개나 과장법으로 ‘문자테러’라는 말을 가끔 써왔지만, 여기선 긴박한 현실이 된다. 문자가 음성통화와 다른 점은, 소리없이 은밀하게 전달 가능하다는 점이다. 빌은 이 침묵의 메시지 송신자를 알아내기 위해, 승객들의 손을 들게도 하고 그들을 집합시키기도 하며, 또 해킹 방식을 통해 소리가 나도록 기술적인 지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한다.


[빈섬의 알바시네]9. 영화 ‘논스톱’, 9.11과 문자테러 영화 '논스톱'의 한장면



이 영화는 액션이라기 보다는 스릴러 혹은 서스펜스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히치콕의 점증하는 긴장이 있고,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닫힌 공간 속에서 ‘우리 모두 중에서 하나가 범인’인 상황이 전개된다. 같은 보안요원인 잭은 테러범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드러나, 격투 끝에 빌에게 죽음을 당한다. 잭의 가방에는 필로폰이 가득 들어있었다. 첫 희생자는 뜻밖에도 기장이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죽은 그의 사인을 알 수 없었다. 조종실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부기장, 승무원 낸시)을 모두 의심해보았으나, 그들이 문자를 보내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빌이 처음 탑승했을 때, 흑인인 잭 화이트(네이트 파커)가 앉았는데 중년여성 젠 섬머스(줄리안 무어)가 창가 자리를 간청하며 바꿔앉았다. 젠은 줄곧 빌이 범인을 수색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 위해 애를 쓰면서, 그의 신뢰를 얻는다. 빌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다가 연기가 벽쪽의 틈새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그 벽을 가린 것들을 뜯어내본다. 그러자 조종실까지 뚫린 구멍이 나타난다. 누군가가 이곳에서 독침을 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 시각 여기에 들어온 사람은, 할머니 한 분(치매에 안 걸렸으니 그건 기억한다고 말했던)과 젠이었다. 빌은 젠을 의심하며 추궁했으나, 그녀는 자신이 창가에 앉게된 고통스런 과거에 대해 털어놓고 자신을 못 믿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낸다.


이런 과정에서 승객들을 난폭하게 대하는 장면이 한 어린 승객의 폰에 찍혀 세상에 나간다. 언론들은 빌 막스가 여객기 테러의 범인이라고 단정하고 그의 신상에 관한 보도를 내보낸다. 그가 어린 딸을 잃고 알콜 중독자가 된 사실이 탑승객용 모니터를 통해 방영된다. 그런 가운데 빌은 비즈니스 좌석의 승객을 모두 이코노미 쪽으로 몰아놓고, 메시지를 보내 ‘소리’가 울리는 휴대폰을 지닌 사람을 찾는다. 비로소 벨이 울렸다. 그를 찾아내 뒷칸으로 끌고가 추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친구는 휴대폰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서 부인을 하다가 갑자기 거품을 물고 쓰러져 죽는다. 그의 몸을 뒤져보니 독침 하나가 발견된다. 이때 빌은 탑승객 모니터에 나오는 자신의 동영상을 보게 된다. 거기서 누군가가 휴대폰을 아까 죽어간 사람의 옷에 집어넣는 장면을 우연히 발견한다. 상황은 급박하게 진전된다.


[빈섬의 알바시네]9. 영화 ‘논스톱’, 9.11과 문자테러 영화 '논스톱'의 한장면



범인은 빌의 옆에 앉을 뻔했던 흑인 행동책 잭 화이트(네이트 파커)와 알쏭달쏭한 사명감을 지닌 탐 보웬(스쿳 맥네어리)으로 드러난다. 잭은 돈을 노렸고, 탐은 9.11 이후 항공보안요원들이 제대로 안전을 챙기지 못해왔다는 불만을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해 일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이게 그럴 만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잭은 살아서 1억5천만 달러를 챙기는 쪽을 택했고, 탐은 그런 선택을 하는 잭을 쏘았다. 탐이나 잭이 메시지를 보낸 것은 분명해 보이나, 기장과 승객을 독살한 사람이 그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승객 호주머니에 휴대폰을 슬쩍 넣으면서 효과가 조금 뒤에 나타나는 독침을 꽂았을 가능성이 있으나, 화장실에서 이들이 독침을 쐈을 리는 없다. 누군가 동조자나 공범자가 있었다는 얘기가 되지만, 영화는 그 고리를 드러내지 않았다. 영화를 본 이들 중에서, 여성 젠 섬머스가 범행 전체의 기획자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이끌고 가기에는 스토리의 전체 맥락이 너무 숨차다. 여하튼 탐은 보안요원 빌의 총에 맞아 죽고, 흑인 잭은 시한폭탄 폭발 때 피하지 못해 죽음을 맞는다.



이 범인 색출 게임과 함께 다른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시한폭탄이다. 영화 제목이 논스톱인 것은, 멈출 수 없는 폭탄을 안고 달리는 여객기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 보안요원 잭의 가방에 들어있던 필로폰은, 다시 뜯어보니 폭탄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가방이 대체 어떻게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폭탄은 이미 째깍거리고 있었고, 빌은 이것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긴박한 결정들을 한다. 폭탄을 바깥으로 내던질 수도 없었고(그러면 기압 때문에 던지기도 전에 터져버린다), 또 선을 제거하는 방식을 쓸 수도 없었다. 그는 폭탄을 여객기 꼬리부분으로 보내 승객들의 가방으로 그것을 에워싸고 파묻는다. 고도를 지상 부근까지 낮춘 상태에서 폭발이 일어나도록 해서 비행기 전체 폭발로 이어지는 것을 막았다. 폭발 이후 비행기는 한쪽이 터지는 사고를 입었지만 조종석의 놀라운 프로의식으로 승객의 추가 피해없이 무사 착륙한다. 아이슬란드에 내린 이 여객기를, 우리 신문이라면 어떻게 보도했을까. 그 숨은 영웅들을 빠짐없이 찾아내고 긴박했던 순간을 재현해낼 수 있었을까. 화제의 인물 빌 막스 스토리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9.11과 이 테러미수 사건의 연계성을 짚어낼 수는 있었을까.


[빈섬의 알바시네]9. 영화 ‘논스톱’, 9.11과 문자테러 영화 '논스톱'의 한장면




보안요원이 지켜낸 안전은 어린 소녀 베카를 통해 상징화된다. 빌이 잃은 어린 딸을 연상시키는 소녀 베카는, 폭발과 불시착에 대비할 때 두려움에 꼼짝하지 않았다. 그때 빌이 다가가 자신의 딸이 지니고 있던 파란 리본을 꺼내 부적처럼 손에 감아주며, 이것이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킨다. 그때 소녀는 말한다. “지금 저에게 뇌물주는 거예요?” 폭발 때 베카는 창밖으로 떨어져나갈 뻔했으나, 빌의 필사적인 구조로 살아났다.



[빈섬의 알바시네]9. 영화 ‘논스톱’, 9.11과 문자테러 영화 '논스톱' 포스터



테러범으로 오인받으면서도 자신의 해야할 일을 위해 목숨을 걸고 승객들을 지켜낸 항공보안요원 빌은, 착륙하자마자 영웅이 되었다. 그의 계좌엔 뜻밖에도 그 난리통에 1억5천만 달러가 들어와 있다. 줄곧 그와 위기 상황에서 호흡을 맞췄던 젠 섬머스는 착륙 이후 그에게 묘한 추파를 보낸다. 이 영화는 9.11의 기억이 만들어낸 한 갈래이긴 하지만, 테러에 대한 미국식의 증오를 표현한 작품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항공보안요원이라는 직업을 지닌, 결점 많고 아픔 많은 한 남자의 치열한 쟁이정신만큼은 오래전 일본영화 ‘철도원’만큼 돋을새기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구석구석 모호한 대목과 아리송한 의문들은 풀리지 않은 채, 뭔가 좀 싱거운 채로 불시착해버린 듯한 그런 뒷맛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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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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