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징후, 사방에 있다"고 경고…박근혜 정부 경제팀에 대해서는 "금융, 부동산 거품으로 경제 살리기 삼가야"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자식 가진 부모로서 세월호 문제는 말하기도 가슴 아픈 주제다. 다만 경제학자로서 말하자면 세월호는 무분별한 규제완화, 그리고 그나마 있던 규제마저도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정부로 인해 생긴 문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51)의 진단이다. 세월호 참사를 '규제' 문제와 연관지어 설명하던 그는 더 나아가 '금융규제'로 논의를 확대해나간다. 장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규제를 하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금융규제도 마찬가지다. 금융위기가 일어나서 실업자가 나오고, 생계 곤란으로 자살하는 이들이 생기면 이것 역시 규제를 잘못 완화해서 사람이 죽는 것"이라며 "배, 비행기 등 물리적 안전도 중요하지만 금융부문에서도 규제가 너무 풀어진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장 교수는 한국 경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한국 및 세계경제에서 금융위기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대표적이다. "영국 런던의 집값이 1년 새 20% 올랐다. 중국도 자본 통제가 되니까 금융위기가 안 나고 있는 것이지, 내부에서는 부실 금융기관도 많고 정부가 통제 못하는 펀드도 많아서 불안요인이 많다"며 그는 "징후는 사방에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에도 회의적이다. 수출이 늘고 고용지표가 개선됐다고 하지만 일자리 질과 관련해서는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으니까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도 많고, 직장 구하기가 힘드니까 자영업자로 나서는 사람도 많다"며 "아직도 지표가 건강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회복이 확실치 않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금융불안도 있기 때문에 회복하더라도 또 한 대 얻어맞으면 금방 다시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도한 외부 자본의 유출입을 막는 자본시장의 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우리 내부에서는 금융이나 부동산 거품을 내서 경제를 살리는 것을 삼가야 한다. 도리어 규제를 강화해야 금융 충격이 와도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2008년 금융위기에서 그나마 타격을 덜 받았던 까닭은 그 직전에 부동산 대출 규제를 엄격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정부의 지난 1년 반 동안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양극화 해소, 복지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어긴 게 너무 많다"며 "이 과정에서 국민을 잘 설득하지 않고 '경제가 어려우니까 나중에 하자'는 식으로 가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출범한 우리 정부의 2기 경제팀에 대해서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서 한 단계 도약해나가는 부분들이 부족했다. 기술력과 인력을 키우고 시장을 개척해야 되는데, 단기적인 효과를 낼 수 없어서 이런 부분들을 뒤로 미뤘다"며 "앞으로 새 경제팀도 장기적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최근 정부가 기업의 배당을 늘리도록 유도하기 위해 내놓은 배당소득 증대 세제에 대해서는 "돈을 돌게 하자는 정책 취지와 달리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로 돈이 흘러갈 텐데 배당을 늘린다고 돈이 잘 돌지 모르겠다"면서 "제조업체가 현금을 쌓아두든 배당받은 부자들이 현금을 틀어쥐든 똑같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정부가 진짜로 돈을 돌리겠다고 생각을 했으면 임금을 올리던지 투자를 하던지 해야 하는데 거기에 배당이 왜 끼어든 건지 모르겠다"는 의견이다.
이미 진행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대해서는 "자유무역은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하면 서로 자극이 되고 좋지만, 수준 차이가 나면 결국 후진국에 손해"라며 "한미 FTA도 20~30년 후에 평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현재는 FTA 등 지역 협정이 정치적 문제가 돼버려서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등 어느 한 쪽에 쏠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정규직을 많이 만들고 개인의 복지를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로 자본주의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던 장하준 교수는 이번에는 경제학 만능주의에 반기를 든 '경제학 강의'를 들고 나타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번 신간에 대해 "자본주의 역사, 경제학 논쟁, 경제와 정치 분리 문제 등 복잡하고 껄끄러운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소개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주류경제학, 특히 신고전파를 무조건 다 틀렸다고 말하는 학자로 오해받는데 그렇지 않다"며 "모든 이론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여러 학파를 다 배워야 제대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고 말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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