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大 장하준 교수 "바뀐 시장이 교과서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책속의 이론과 맞지 않아
英 대학들, 교재 다시 쓰고 커리큘럼 재편성 움직임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 "현재의 경제학 수업은 급변하는 경제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장하준 교수는 최근 현지 일간 가디언과 가진 회견에서 대학의 경제학 수업에 대해 이처럼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요즘 경제학 수업이 지나치게 수치 모델에 치중돼 있다"며 "그 결과 경제학과 졸업생들이 실제 금융 세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영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경제학 교육이 잘못됐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시경제에서부터 실물경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대학의 경제학 수업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런 우려에 영국 재무부는 최근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 수업'이라는 주제 아래 주요 대학 경제학 교수들을 초청해 콘퍼런스까지 열었다. 여기에는 영국 중앙은행(BOE)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콘퍼런스는 잘못된 경제학 교육에 대한 성토장이나 다름없었다. 전문가들은 "정체된 경제학 교육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마이클 조페 임피리얼칼리지런던 교수는 "경제학 교재 저자들에게 왜 잘못된 경제학 모델이 교과서에 그대로 담겨 있는지 물었다"며 "그러자 이들 저자는 한결같이 '편집자들이 그대로 가길 원했다'고 답했다"고 가슴을 쳤다.
경제학자들은 성토에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웬디 칼린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경제학과 교수는 당장 내년부터 새로운 커리큘럼을 도입하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대안경제학을 공부하는 영국 대학생들 모임인 '경제학 다시보기(Rethinking Economics)'도 그의 행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칼린 교수는 다양한 경제학 수업을 준비 중이다. 시중에 나온 교재는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와 뜻이 같은 경제학자·금융전문가 풀이 교재 내용을 새로 쓰게 된다.
새로운 커리큘럼을 원하는 대학이 있으면 무료로 내용도 제공한다. 커리큘럼뿐 아니라 학생들의 피드백을 중시하는 등 수업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칼린 교수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영국 대학만이 아니다. 인도의 아짐프렘지대학은 교재 개발에 필요한 기술적 문제를 전담하기로 결정했다. 인도 외에 러시아·콜롬비아·칠레 등 8개국 대학들도 프로젝트 동참 의사를 밝혔다. 영국의 대형 헤지펀드 브레반 하워드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칼린 교수는 "금융위기로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이론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이야말로 현대 경제학의 황금기"라며 "그러나 요즘 경제학도들은 경제에 대해 택시기사들보다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개탄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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