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재발간하는 펠리컨 북스의 첫 책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보통의 사람들이 경제학을 배울 때 가장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난관이 바로 수없이 많은 종류의 학파들이다. 고전학파, 케인즈학파, 신고전학파, 마르크스 학파 등 다른 듯 비슷하고, 비슷한 듯 다른 이들 학파를 보면 딱 엇비슷한 구호로 나열된 정당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또 이들 학파의 이론이 현실 경제에서 도대체 어떻게 적용하는지 파악하기도 벅차다. 경제학이라면 골치 아픈 이들을 위해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제시하는 방법은 명쾌하다. 바로 각각의 학파의 장단점을 취합하는 '경제학파 칵테일'이다.
장하준 교수는 각 학파의 성장배경과 특징 등을 신간 '경제학 강의'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어떤 학파가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오스트리아 학파(A), 행동주의 학파(B), 고전주의 학파(C), 개발주의 전통(D), 제도학파(I), 케인스 학파(K), 마르크스 학파(M), 신고전주의 학파(N), 슘페터 학파(S) 등 대략 9개 학파로 간추려볼 수 있다. 칵테일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의 활력과 생존능력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맛보려면 'CMSI',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다양한 견해를 맛보려면 'CAN', 왜 가끔은 정부 개입이 필요한지 알고 싶으면 NDK 등으로 제조하면 된다.
모든 경제 이론마다 저마다의 효용이 있으면, 모든 이론 위에 군림하는 '절대반지' 이론은 있을 수 없다는 게 장 교수의 생각이다. 더 나아가 각 학파간의 '이종교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생각은 지난 30년 가까이 경제학의 유일한 주류 이론으로 군림해온 신고전학파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마찬가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고전학파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회의가 커진 상태에서도 하버드 대학은 물론 대부분의 국내 대학에서 여전히 '맨큐의 경제학'을 교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신고전학파의 아성은 굳건하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근본적인 사회 변화 없이 가능한 선택만 고려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많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 심지어 좌파 성향의 '리버헐'한 폴 크루그먼조차 가난한 나라 공장의 저임금 정책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저임금 노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다른 선택은 실업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맞다. 만약 우리가 저변에 깔린 사회 경제적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기꺼이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고 나선다면 저임금 노동 말고도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내용은 쉽고 순하지만 내 책 중 가장 래디컬하다"는 저자의 평대로 이 책에서는 '경제학 만능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주류 경제학은 이를 예측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자기 분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경제학이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있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제학을 배우고, 경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할 이유는 "경제는 전문가들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로 여러 화두를 던졌던 장하준 교수는 이번에는 친절한 경제학 입문서를 통해 경제학에 대한 기본 원리부터 다시 쌓아나가려고 한다. 영국에선 25년 만에 재발간하는 펠리컨북스가 첫 번째로 고른 책이라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장학준 / 김희정 옮김 / 부키 / 1만68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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