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장현 기자] 얼마 전 금융감독원으로서는 낯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금감원이 소비자 민원발생을 평가해 결과가 불량한 금융사 지점에 이른바 '빨간딱지(평가서)'를 붙였는데 금융권 반발로 한 달 만에 철회한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5월 민원발생이 잦은 은행과 보험, 카드사 등 17개사 전국 3000여개 지점 입구에 이 딱지를 붙이도록 했다. '2013년도 금감원 민원발생평가 결과 5등급(불량)'이라는 글자를 A4용지에 폰트 55 크기로 인쇄해 3개월간 게시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했다.
금융사는 즉각 반발했다. 금감원이 민원발생평가 결과를 안내토록 한다는 점은 알려줬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방식으로 창피를 줄 지 몰랐다는 것이다. 이런 반발에도 금감원은 딱지를 잘 붙였는지 미스터리 쇼핑까지 나서며 공세수위를 높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민원발생 평가에서 5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한 일부 보험사에 대해 현장 점검을 벌이기도 했다.
기세등등하던 금감원은 한 달 만에 "딱지를 떼도 좋다"고 꼬리를 내렸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명분이었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금융노조가 '금감원 불량 딱지'를 제작해 배포하려 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2013년 국민권익위 반부패 경쟁력 평가에서 4등급을 받았다. 평가대상 기관 중 꼴지다. 2012년 권익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도 역시 최하위를 받았다. 노조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포스터를 제작해 영업점에 나눠줄 예정이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자기 관리ㆍ감독도 제대로 못하는 금감원이 금융사를 모욕할 자격이 있냐"면서 이 포스터를 들고 금감원을 찾아갔다. 노조는 영업점에 붙은 '빨간 딱지'를 철회하지 않으면 금감원과 영업점에 이 딱지를 동시에 게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노조가 방문한지 하루 만에 금감원은 민원발생 평가서 부착을 금융사 자율로 맡겼다. 섣불리 휘두른 칼날이 되레 자신에게 돌아온 꼴이 된 것이다. 감독의 기본은 면박과 창피주기가 아닌 예방과 사후관리다. 줄줄이 징계가 예고된 요즘, 금감원이 좀 더 품위 있게 칼 휘두르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이장현 기자 insi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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