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강수일(27)은 프로축구 포항스틸러스가 자랑하는 '화수분 축구'의 새로운 전형이다. 포항의 화수분 축구는 주축 선수들의 이적과 부상으로 공백이 생길 때마다 적절한 대체 선수가 기다렸다는 듯 등장해 우려를 지워내는 데서 나온 말이다. 주로 유소년 팀 출신 선수들의 역할이었지만 강수일은 임대선수 신분으로 가세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강수일은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2014 하나은행 FA컵 4라운드에서 연장전까지 뛰며 막판에 한 골을 넣었다. 체력이 바닥난 연장 후반 16분, 1-2로 뒤져 패색이 짙은 가운데 기록한 동점골이어서 돋보였다. 승부차기에서 2-4로 져 8강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2년 연속 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린 포항의 저력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한 골이었다.
황선홍 포항 감독(46)은 "강수일은 제공권이 좋고 돌파력도 뛰어나 기존 우리 팀 공격수들과는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며 "한 단계만 도약하면 더 좋은 선수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황 감독의 바람대로 그는 포항에 입단한 이후 서서히 잠재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도 자취를 감췄다. 그는 K리그 추가 선수 등록 마감일인 3월 26일 제주를 떠나 포항에 임대 선수로 합류했다. 무릎 십자인대를 다쳐 장기 부상자로 빠진 오른쪽 측면 공격수 조찬호(28)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이적이었다. 그동안 정규리그 여덟 경기에 나와 2골 2도움을 올렸다. 2007년 프로에 데뷔한 뒤 8년차에 접어든 올 시즌 가장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강수일이 새 팀에서 두각을 나타낸 비결은 조직적인 플레이를 강조하는 포항의 전술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포항이 박성호(32ㆍ요코하마), 노병준(35ㆍ대구), 황진성(30)과 같은 주요 공격진이 팀을 떠나고 김승대(23), 이광혁(19), 문창진(21) 등 신예들이 가세해도 균열이 적은 것은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팀 플레이의 효과다. 주로 개인 기량에 의존해온 강수일에게는 잘 짜인 포항식 축구가 도움이 됐다. 발이 빠르고 몸놀림이 유연해 공격 진영에서 위협적인 반면 골 결정력이 부족했던 약점까지 보완했다.
이적 초반에는 의욕이 앞서 슈팅을 남발했으나 차츰 동료들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에 눈을 뜨면서 적응력을 높였다. 12일 울산과의 정규리그 원정경기에서는 머리와 발로 도움 두 개를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최근 두 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오름세다. 황 감독은 "팀 훈련이 끝나도 혼자 남아 슈팅 연습을 하며 부족한 점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그런 모습이 경기력으로 나타난다"고 평가했다.
강수일은 경기장 밖에서 팬들과 교감하는데도 적극적이다. 특히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경기장에 초대하고 유니폼을 선물하는 등 남다른 애정을 보낸다. 미국인(아프리카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선수로서 학창시절 경험한 소외감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부터는 국내 첫 다문화초등학교인 '지구촌학교' 홍보대사를 맡아 후원을 계속하고 있다. 이듬해 8월에는 K리그 100경기 출장으로 받은 상금과 수당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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