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未安)함이란 내가 저지른 부당함을 갚는 일종의 자해이다. 나의 안(安)을 덜어냄으로써 당신이 안(安)하지 못함과 형평을 맞추려는 낮춤이다. 그런데 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내가 저지른 일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 때문에 당신이 안(安)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미안함을 못 느끼는 건, 제대로 진상을 알지 못하거나 외면하기 때문이다. 우린 자주 미안해야할 대목에서 미안해하지 않는다. 미안해하지 않는 것이 더욱 그에게 미안한 일인 것도 모르고 있다.
미안함을 느끼는 기제는 저울의 눈금을 읽는 것과 같다. 눈금은 단순히 숫자로 표시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보면서 내가 생활을 불규칙적으로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고, 야식을 즐겼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았거나 혹은 무엇엔가 지나치게 몰입하여 충분한 영양을 주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어있다. 눈금이 커지면 더 많이 미안한 것이다. 미안함의 정도를 크게 느끼면 그것을 바로잡고싶은 욕망도 커진다. 그런데 묘한 것이, 너무 눈금이 크면 아예 무시함으로써 그 감정에서 나와버리려고 한다. 작은 것이 미안해야 큰 것도 미안하다. 미안함에 대한 자각증상이 없어지면, 인간은 무엇이 될까.
미안한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건강한 감정이다. 미안해지면 인간의 감정의 온도가 올라간다. 미안함은 인간을 따뜻하게 하는 일면이 있다. 미안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만, 이왕 생긴 미안한 일이라면 좀더 절실하게 미안해하는 것이 좋다. 미안한 일을 미안해 해야 같은 미안한 경우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사랑을 이루는, 가장 달콤하고 가장 드라마틱한 부위에는 이 미안함의 감정이 있다는 걸 발견한다. 사랑하면 미안해진다. 나같은 걸 사랑하게 해서 미안하고 내가 감히 그의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하고 그를 혼란스럽게 해서 미안하고 그에게 좋은 사람이 못되어서 미안하고 그를 마음만큼 잘 대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사랑을 할 때 느껴지는 모든 미안한 일은, 무슨 특별히 미안해야할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일을 미안함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것은 자기를 헐어내서 상대를 키워주고 싶은 헌신의 마음이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미안함이란 바로 눈높이와 관련된 감정이다. 내가 낮고 남이 높아져야 제대로 미안해진다. 내가 귀하고 남이 천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 턱이 없다. 나의 잘못이 당연하지 않은 것은 내가 잘못할 수 있는 권리도 없고 그가 내 잘못을 감수해야할 의무도 없는 까닭이다. 미안함이란 모처럼 겨우 낮아지려고 하는 마음이다. 그 자리에서 출발하여 제대로 낮출 줄 알면, 미안함도 괜찮은 공부련만.
미안함도 마음의 여유에서 나온다. 여유가 없으면 뻔뻔스러워진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미안함을 부른다. 자신의 무엇을 떼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 미안함은 자중자애에서 나오는 온기같은 것이다. 미안함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냥 지나쳐온 시선을 다시 되돌려, 가만히 살피는 눈이다. 미안함에는 가끔 눈물이 매달리기도 하고 후회와 고마움이 매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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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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