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理髮)엔 원래 성적인 뉘앙스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지만, 어느샌가 남자들만의 일이 되었다. 미장원이나 미용실, 혹은 헤어샵 따위의 여성 전용 이발업소가 생기면서부터일 것이다. 이것이 이발소의 등장과 함께 생긴 것인지, 아니면 차후에 성적 분화를 거친 것인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 여하튼 이발과 대응하는 용어로 쓰인 미장(美粧)이나 미용(美容)이란 말에는,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표현이 없고, 예쁘게 용모를 꾸미는 것, 혹은 예쁜 얼굴이란 의미 밖에 없다. 머리카락을 굳이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여성의 신체발부를 직접 호칭하는 것을 삼가는 일반적 미덕이 발휘된 때문일까.
영어로 넘어오면서 헤어가 다시 등장했지만, 헤어샵은 곧 헤어커커, 헤어디자인 따위의 전문적인 냄새가 풍기는 표현으로 진화를 거듭한다. 이 헤어뭐시기는 남자들의 머리까지 수용하는 흡인력을 지녀, 이젠 이발소는 퇴폐중년들이나 아이와 노인들이 가는 곳이거나 목욕탕에나 있는 것이고, 헤어샵은 그 나머지 다양한 머리를 매만지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발이란 말은 커트라는 말로 정리되었고, 머리를 마는 컬링이나 색깔을 넣는 컬러링이 더욱 중요한 헤어디자인 영역을 이뤘다. 이발소에서도 염색을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노화한 백발을 가리는 '치료적 도포'인 경우가 많다.
조선말 단발령 이후로, 머리를 깎는 일은 일상의 삶을 이루는 풍경이 되었다. 여자들도 깎고 남자들도 깎지만, 그것은 시간이 밀어낸 터럭의 길이를 재조정하는 작업 이상의 미학적 자기 디자인이 되어있는 게 사실이다. 머리를 기르고 자르는 일은, 존재의 분위기를 바꾸고, 이미지를 경신하고, 또 기분마저 전환시킨다. 머리를 바싹 자르고 출근한 직장인에겐 혹시 저 친구 사표 쓸 생각을 하나 하는 마음이 들고, 긴 머리를 싹둑 자른 여인을 보면 혹시 이소리의 '바람이 분다'에 나오는 '머리를 자르고' 대목에 지금 처해있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여자가 이발을 하지 않는 까닭은, 이발이 지닌 방어적 개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길어진 머리카락을 처리해야 하는 게 아니라, 머리카락을 리디자인함으로써 자신의 미적 가치를 드높이는 적극적 행위이기에 수십만원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것이리라. 이발은 자기를 건사하고 사는 일이 삶의 목표였던 시절에 신체에 대해 행해왔던 근대적 태도의 자취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젠 머리카락을 처리하지도 정리하지도 않는다. 그것에 의미와 가치와 느낌을 부여하고, 존재의 다채로운 코스프레로 쓴다. 이발이란 말 한 마디에도 핵심 문화사가 들어있는 셈이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