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맞이 여행에 가족단위 희생자 다수
불명확한 정부 소통에 분통터트리기도
뒤늦게 등장 제주항공 경영진에는 격앙
30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는 제주항공의 7C2216편 여객기 잔해가 여전히 널브러져 있었다. 꼬리 부분만 남은 항공기 절단면을 통해 온갖 집기와 부품이 그을린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불길과 충격이 희생자들을 덮친 흔적은 다소 흐린 날씨에도 뚜렷했다.
항공기는 활주로 외벽에 들이받은 후 폭발하면서 꼬리 부분만 앙상히 남았다. 후미를 제외하면 항공기라는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잿더미만 가득했다. 크레인이 들어 올린 항공기 내부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전남 무안소방서 직원들은 잔해를 들추며 희생자 수색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이 띄운 드론도 주위를 날아다니며 흔적을 찾았다. 이번 항공기 참사가 버드 스트라이크(엔진으로 새가 빨려 들어감)에서 비롯됐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지만 야속한 철새들은 참사 이후엔 목격하기가 어려웠다. 이날 오전 8시 전남권 일부에는 가시거리 1㎞ 미만의 짙은 안개가 끼었다.
공항 청사 대합실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가족들로 가득했다. 희생자를 호명할 때마다 유가족들의 고개와 무릎이 꺾였다. "살려만 주세요, 살려내 주세요", "아니야, 이건 아니야" 등 유가족들의 통곡이 쏟아져나왔다.
연말과 크리스마스 휴일과 맞물린 시기라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았다고 한다. 최연소 탑승자는 2021년생 3세 남아였고, 최고령 탑승자는 80세였다. 20세 미만 탑승자도 15명가량으로 알려졌다. 최고령 탑승자는 자녀와 친인척 등 8명과 함께 팔순 잔치를 위해 여행을 떠났다 일가족이 참변을 당했다.
슬픔 가득한 유가족들은 정부 대응에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정부의 소통 창구가 명확하지 않아 질의응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유가족들은 A씨는 "누나와 매형이 탑승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다"라며 "어떤 명확한 안내도 없는데 기다리고만 있자니 속이 타들어 간다"고 털어놨다.
사고 수습 내용은 세종시와 서울 강서구 등에서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정작 현장의 유족들에게는 소식이 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한 유가족은 "현장에 나와 있는데 정확한 사고 조사 경위는 뉴스를 보고 알아야 하는 게 말이 되냐"라고 호소했다. 일부 격앙된 유족들은 정부 관계자에게 제대로 된 소통 창구도, 진전된 소식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사고 현장을 직접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임시 유가족 대표를 맡은 박한신 씨는 "남성분들만이라도 해가 지기 전에 사고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며 "최대한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진철 부산지방항공청장은 "선례가 없을뿐더러 참상에 따른 트라우마도 생길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김이배 대표 등 제주항공 경영진이 전날 오후 늦게 무안공항에 등장하자 반응은 더욱 격앙됐다. 김 대표와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고준 AK홀딩스 대표 등 제주항공과 모회사 애경그룹 경영진들은 29일 오후 8시께 무안공항에 나타나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추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씨는 이들을 향해 "전국이 서너시간이면 닿는 세상인데 11시간 만에 나타나서 뭐하자는 건가"라고 질타했다.
한편 30일 오전 11시 기준 신원이 파악된 희생자는 141명이다. 전라남도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숨진 승객 175명을 거주지 기준으로 분류하면 광주 81명, 전남 76명, 전북 6명, 경기 4명, 서울 3명, 제주 2명, 경남·충남·태국 각 1명이었다. 승무원은 조종사 2명과 객실 승무원 4명 등 6명이었다. 모든 탑승객 181명 중 승무원 2명만 구조됐다.
무안(전남)=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