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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팀장 달 나이에 알바만 몇 년째" 간병·학업 이중고에 정신건강 '빨간불'[간병에 갇힌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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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간병과 사회생활 사이…'아슬아슬' 줄타기
장기간 돌봄으로 학업소홀·경력단절 우려
"경제·정서적 자립도 중요"

편집자주3년 전 22세 청년이 생활고와 간병노동에 내몰려 아버지를 숨지게 한 이른바 '간병살인' 사건 당시 앞다퉈 지원법을 만들겠다 외치던 정치권의 구호는 공염불로 끝났다. 대신 각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고령·질병으로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을 '가족돌봄청년'이라 명명하고 돌봄 지원 정책을 약속했지만 지원 기준 연령이 되지 않는 아동은 사각지대에 놓였다. 더 이상 돌봄에 내몰려 케어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며 [간병에 갇힌 청춘] 기획을 통해 청춘의 돌봄 노동에 대해 진단하고 나아갈 길을 고민해본다.

서른셋 우정씨의 인생에선 항상 돈이 문제였다. 아버지는 어릴 때 연락이 끊겼고, 2003년 조현병으로 장애 판정을 받은 어머니가 멀쩡한 직장을 갖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머니의 보살핌과 삼촌의 지원이 없었다면 무탈히 성장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단 걸 깨달은 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다. 우정씨의 어머니는 “저 사람들이 내 험담을 했다”며 느닷없이 화를 내거나,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전쟁이 났다며 겁을 내곤 했다. 우정씨는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5살짜리와 함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우정씨 모녀가 함께 살던 곳은 서울 양천구의 한 반지하였다. 보증금 500에 월세 24만원을 주고 구한 집이었다. 해도 잘 들지 않아 여름철 빨래가 고역인 집이었지만 서울 원룸 평균 월세가 보증금 1000만원 기준 70여만원에 육박하는 시대에 우정씨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우정씨는 약국 조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어머니의 병원비, 월세 등을 감당하고 있다(현재는 서울시복지재단과 LH의 도움을 받아 서울 동작구로 이사를 마쳤다.).


"남들 팀장 달 나이에 알바만 몇 년째" 간병·학업 이중고에 정신건강 '빨간불'[간병에 갇힌 청춘] 우정 씨(오른쪽)와 할머니의 모습. 어릴 적부터 우정 씨를 돌봐주던 할머니는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사진 우정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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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왕복 4시간 거리의 병원에 어머니를 입원시킨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우정씨는 어릴 때부터 쭉 양천구에 살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곳을 찾아 서울 금천구, 인천 계양구, 경기 의정부 등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다. 차가 없는 우정씨가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가려면 서울 5호선을 타고 김포공항역에 내려 공항철도로 환승해 계양역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인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탄 뒤 작전역에 내려 다시 한번 버스를 타야만 병원에 도착한다.


대학엘 가고 싶었지만 학비가 없었다. 우정씨의 가정형편이라면 국가장학금이 지급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1991년생이 대학에 입학할 당시는 현행 국가장학금 제도가 시행되기 전이라 등록금 부담이 컸다. “학비는 삼촌께 사정하면 도와주셨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게 쉽진 않잖아요. 나는 딸도 아닌데. 삼촌은 제 또래의 딸이 있거든요. 눈치 주는 사람은 없는데 이상하게 항상 주눅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우정씨는 남들보다 1년 늦게 모 사이버대학에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일반 4년제 대학보다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어머니를 돌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택한 차선책이었다.


그가 성인이 됐을 무렵엔 또 다른 돌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우정씨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고령이 되면서 혼자서는 식사도 챙기지 못할 만큼 거동이 어려워진 것이다.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주돌봄자도 우정씨가 됐다.


"남들 팀장 달 나이에 알바만 몇 년째" 간병·학업 이중고에 정신건강 '빨간불'[간병에 갇힌 청춘] 우정 씨 어머니에 대한 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제도 신청 태그. 사진 우정 씨 제공

자연스럽게 우울과 울분이 커졌다. 이유 없이 몸이 아프고 붓기 시작했지만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불균형한 식사, 좋지 못한 주거환경, 돌봄 스트레스 혹은 이 셋을 동시에 겪어야 하는 우정씨의 삶 자체가 원인일 수도 있었다. 분명한 건 그 어떤 원인도 당장 우정씨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얼굴이 띵띵 부어서 창피해서 밖을 못 나갔어요. 남들이 보면 성형 부작용이라고 할 만큼 이상하리만치 붓더라고요. 사람들이 못 알아볼 정도. 가장 예쁘고 건강해야 할 20대 초·중반에 아프니까 참 힘들더라고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 2~3일 가라앉았다가 다시 되풀이돼요. 몇 년 주기로 계속 아파요.”


우울증으로 정신의학과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부작용으로 살까지 찌기 시작했다. 갑자기 체중이 15㎏이 불어나면서 자신감도 하락했다. 우정씨는 “할머니도 엄마도 다 내가 돌봐야 해, 먹는 것도 없는데 몸은 점점 비대해져, 남들은 취업해서 팀장 달 나이에 알바만 몇 년째 하고”라며 “환경을 벗어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우정씨가 겪은 어려움들은 가족돌봄청년들의 고질적인 문제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가족을 돌보면서 학교, 직장 등의 사회활동을 병행해야 하는데, 특히 청소년·청년기에는 장기간의 돌봄이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걸림돌이 된다. 이 시기 가족돌봄으로 생긴 공백기는 사회 적응 및 복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향후에도 경제적으로 빈곤의 악순환에 갇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남들 팀장 달 나이에 알바만 몇 년째" 간병·학업 이중고에 정신건강 '빨간불'[간병에 갇힌 청춘]

사회가 돌봄청년의 자립을 도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훈련의 기회를 보장하고, 신체적 안전·정서적 안정 속에서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게 시급한 상황이다.


실제로 가족돌봄아동·청소년 10명 중 3명은 학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가족돌봄아동·청소년 유형분석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29.6%가 숙제, 공부 등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지원으로 직업훈련·취업지원(35.5%)나 진로교육·진로상담(34.4%)을 꼽은 응답도 많았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돌봄아동·청소년은 학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거나 수업 시간에 졸거나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할 수 있다. 가족을 돌보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학업 수행의 질이 낮은 것"이라며 "돌봄아동·청소년·청년에 대한 인식을 정립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 등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남들 팀장 달 나이에 알바만 몇 년째" 간병·학업 이중고에 정신건강 '빨간불'[간병에 갇힌 청춘]

정서적인 지원책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돌봄과 가사노동, 생계의 삼중고를 겪다 보면 정신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질 위험이 높다. 돌봄청년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아픈 가족을 돌보다가 젊음을 다 소모해버릴까 봐, 돌봄으로 청춘을 허비해버리는 것 같아서 무섭다는 토로가 자주 올라온다. 이러다가 내가 늙고 병들면 누구에게도 돌봄받지 못하고 버림받을 것 같다는 고민도 있다.


가족돌봄청년 당사자 커뮤니티 'N인분'의 조기현 대표는 "자립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이건 취업 등 경제적 자립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며 "돌봄청년들은 '집에 아픈 사람이 있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하는 압박감과 '우리 엄마는 나 없으면 안 돼'하는 비정상적 애착이 형성된다. 이걸 떼어내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정서적 독립도 필요하다. 돌봄청년들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나 대상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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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서는 돌봄청년의 신상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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