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배(小人輩)의 키워드는 '배(輩)'에 있다. 소인은 신체의 크기나 정신의 크기나 존재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이 자신에게 있느냐 아니면 밖에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소인은 왜소나 무능이나 무력이나 무위를 비판하는 말이 아니라, 자중(自重)할 수 있는 무게를 지녔느냐를 심문하는 말이다. 소인배는 자신 속에서 존엄과 가치를 찾지 못하고, 무리를 이루어 그것에 의지하여 그 무게를 벌충하고자 한다. 그래서 소인배는 남의 말이 중요하고 남의 관점이 중요하며 남의 생각이 중요하고 남의 사례가 중요하다. 그것을 업어야 안심이 되고 여론을 타야 살아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자기 관점은 없으며, 관행이나 세론이나 인용을 자기의 위세로 포장한다. 그래서 소인배는 무리를 이뤄 짖어대고 울어댄다. 그 존재의 중심이 집단에 있기에, 그에게 작동하는 것은 원심력 뿐이다. 혼자서는 빈약하고 두렵고 방향이 없고 무게감이 없기에, 바람에 날리고 물결에 휩쓸리며 중구(衆口)의 춤추는 혀 위에서 춤춘다.
대인이나 군자는 배(輩)일수 없다. 존재의 중심이 자기에게 있기에, 대인끼리의 소통은 다만 담담한 교(交)일 뿐이다. 교(交)가 성기다고 해서, 상대의 중심을 업신여기거나 폄하하지 않고, 교(交)가 긴밀하다고 해서 자신의 간이나 쓸개나 생각의 중심을 내주지는 않는다. 관계는 한 존재의 외연일 뿐이며, 관계가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관계의 가치를 드높인다, 당당한 고립과 홀연한 자유가 자존감을 삼엄하게 지킨다. 옛사람들이 군자나 대인을 논한 것이 지위의 높이나 존재의 규모를 말하는 것이었다면 역사가 그 따위 것을 왜 기록해놓았겠는가. 대인은, 오로지 존재의 중심이 자기의 내부에 있는 사람이다. 키가 3척밖에 되지 않는 아이라도 대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거기에 있다. 내부에 열정과 창의의 중심이 있고, 거기에서 뿜어나오는 생의(生意)가 존재 전체를 움직이는 사람. 그것만이 대인이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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