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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대엿∼민국(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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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대엿∼민국(81) 낱말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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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게임성적과 16강 진출 실패를 안고 돌아온 월드컵 태국전사들이 공항에서 엿세례를 받았다. 무기력한 플레이에 대한 실망과 격앙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씁쓸함이 남는다. 대한∼민국이나 대엿∼민국이나 뭐가 다르냐, 큰 승리를 거뒀을 때 보내는 환호나, 그 반대의 비아냥이 뭐가 다르냐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분노에도 품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정적인 결과일 때의 포용과 자제력이 이 나라와 사회의 품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엿세례를 받은 선수들이 받을 깊은 트라우마를 생각해보라. 오랫동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충격일 것이다.

그런데 '엿 먹어라'는 속어는 어디서 나왔을까. 혹자는 남사당패에서 여자의 성기를 그렇게 표현하기에, 성적인 모욕을 담은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설도 있다. 1964년 12월7일에 치러진 중학교 전기입시의 공동출제 사지선다형 문제 중에 이런 게 나왔다고 한다.


<문제)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디아스타제 (2)꿀 (3)녹말 (4)무즙

채점에서 정답은 (1)디아스타제였다. 그런데 (4)번인 무즙 또한 엿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그들은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문교부와 교육청과 대학에 찾아가 그것을 던지면서 소리쳤다. "엿 먹어봐라. 엿 좀 먹어봐. 이게 무즙으로 쑨 엿이야. 엿 먹어, 이놈들아."


이 사건으로 김규원 당시 서울시교육감, 한상봉 문교부차관이 사표를 냈고, 6개월 뒤에 무즙을 답으로 써서 시험에 낙방한 학생 38명을 정원에 상관없이 경기중학 등에 입학을 시켜 수습을 했다. 지금도 수험생에게 엿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는데, 엿이 잘 붙기에 합격하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엿이 바로 '문제의 정답'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런 어원으로 보자면, 실패한 태극전사에게 빅엿을 먹인 팬은, 다음 월드컵의 16강 정답을 엿속에 넣어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엿처럼 문전에 착 달라붙으란 말이야. 그리고 패스하면 공이 엿처럼 붙고, 또 무엇보다 내가 너희들에게 쏘는 것처럼 소나기공격으로 허점을 뚫으란 말이야! 어쩌겠는가. 엿같은 응원법이지만, 입이 엿먹은 뭐시기처럼 붙었으니 귀와 눈이라도 열어 새길 수 밖에.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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