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英雄)이나 화랑(花郞)이란 말은, 굉장히 씩씩해 보이는 말이지만, 그 뜻을 살펴보면 꽃남자이다. 여성이나 여성의 성을 꽃으로 비유하는 일은 익숙하지만, 남성을 꽃으로 읽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트렌드로 알고 있었기에, 저런 옛사람들의 생각이 문득 놀랍다.
꽃미남이나 '꽃보다 남자', 꽃남, 혹은 예쁜 남자 따위의 말이 유통되는 것은, 남녀관계가 하늘과 땅의 유별(有別)에서 슬며시 오빠 동생이 되고, 자기와 자기가 되고, 마침내 누나와 연하남의 여남(女男)관계가 보편화되는 큰 흐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자의 사회적 이미지가 커지고 남자가 작아지면서, 남자는 이쁨받는 존재, 여자에 의해 가치지어지는 존재로 바뀌어 가는 경향이 있다. 남자가 꽃이 되는 일은, 아름다움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존재라는 남성가치의 중대한 전환을 담고 있다. 물론 어느 때고 남자가 지닌 특유의 아름다움은 있었지만, 그것이 이렇게 성애의 주력상품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꽃미남의 특징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수컷가치와는 사뭇 다른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오히려 여성이 오랫동안 지녀온 아름다움을 이식하거나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남성이 왜 그런 성적 전략으로 진화하는가. 그건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여성이 남성을 선택할 수 있고 부양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다시 돌아가, 영웅(英雄)이란 말을 살펴보면 이 때의 꽃남자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긴 하지만 지금의 예쁨과는 달리 남자들의 입에 오르내린 경탄이다. 수많은 지엽(枝葉)의 수컷 사이에서 오직 화려한 꽃으로 피어난 수컷에 대한 예찬이다. 영웅의 꽃은 주변을 압도하는 존재이며, 그 피어나는 생명력으로 스스로 우뚝해지는 압권(壓卷)이다. 꽃은 얼마나 강인한가.
또 화랑이란 말을 살펴보면, 이것은 오히려 지금의 꽃남이 추구하는 화용월태가 있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은 여성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오히려 그것은 그들의 사회적 능력만으로도 충분했기에), 하늘(神)에게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하늘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하고만 소통할 수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 하늘에게 말을 거는 것이 천신에 대한 진정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신념이, 화랑이라는 사회적 존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 때 쓰인 '꽃'이란 말은, 헌화(獻花)라는 표현에 남아있는 그 경건함의 의미이다.
남자는 예전에도 꽃이기를 염원했지만, 그것은 무리 속의 으뜸이라는 차별성을 의미하거나 가장 숭고한 일을 맡은 자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적 패러다임 속에서 여성적 취향에 부응하는 꽃이라는 점이 좀 다르다. 이것은 청춘시절의 남자에만 국한된 가치였지만, 곧 남성 일반의 가치로 열려 꽃중년, 꽃할배까지로 의미의 경계를 밀어놓았다. 이에 대해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것은 단지 신이 유리병 안에서 인간을 겨냥해 제조하는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의 비율 차이가 만들어내는 신드롬이 아닐까. 남자들에게 여성호르몬을 조금씩 더 주입하는 조물주의 뜻은 대체 뭐란 말인가. 문명 전체의 양상을 바꾸기 위한 원대한 책략일까. 꽃남은, 호르몬 배분 전략의 전위에 선, 가치 전도(轉倒)의 전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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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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