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의결정으로 집단자위권 행사 길 열어
[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전범 국가 일본이 패전 69년 만에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될 길을 열었다. 각의 결정으로 헌법해석을 바꿔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집단자위권 행사 요건을 엄격히 해 '한정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고 아베 신조 총리는 전쟁하는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전범국가 일본의 이 같은 변신을 보는 주변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본 내에서도 헌법 해석 변경을 놓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어 일본 정부 일정대로 순탄하게 집단자위권 행사의 길이 마련될 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각의결정으로 집단자위권 허용=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이 자위대 창설 60주년인 1일 집단자위권 행사가 허용된다는 새로운 헌법 해석을 채택했다.
아베 총리 내각은 이날 오후 총리관저에서 임시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각의 결정문을 의결했다.
집단 자위권은 동맹국 등 다른 나라에 대한 공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반격하는 권리다.
각의 결정문은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권리가 근저로부터 뒤집히는(근본적으로 위태로워지는)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이를 배제할 다른 적당한 수단이 없을 때, 필요 최소한의 실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위 조치로써 헌법상 허용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각의 결정문에는 "방치할 경우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태(일명 회색지대 사태)시의 자위대 출동 절차를 신속화하도록 검토한다"는 내용과 국제 평화 및 안보 공헌 활동과 관련,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후방지역', '비전투지역'으로 구분하지 않고 타국 군대에 필요한 지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국제평화유지활동에서의 '긴급 경호' 때 자위대의 무기 사용 등은 파견국 정부의 동의 등을 조건으로 가능하도록 법을 정비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아베 정권은 가을 개원할 임시국회에서 자위대법 등 집단 자위권 행사와 관련된 국내법을 정비하고 미국과의 협상을 거쳐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 방침을 새롭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이르면 연내에 개정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전수방위 안보정책 일대 전환=이로써 아베 내각은 1981년 5월 '일본도 주권국으로서 집단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행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힌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전 내각의 답변서 채택 이후 33년여 이어온 헌법해석을 바꿨다.
이번 헌법해석 변경은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의 무력사용을 포기'한다는 헌법 9조에 입각해 '전수(專守) 방위(오직 방어를 위한 무력만 행사한다는 내용)'를 표방해온 전후(戰後) 안보 정책의 일대전환을 의미한다.
공영방송인 NHK는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에 의해 앞으로 관련 법률 정비 등이 추진되면 자위대와 미군 등과의 협력 강화가 진행되고, 해외의 자위대 활동이 확대될 것으로 보여 전후 일본의 안보정책은 큰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교도통신은 "헌법 9조의 취지에 입각한 전수방위의 이념을 일탈할지 모른다"면서 "제동장치인 '신 (新) 무력행사 3요건도 추상적이어서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선을 긋기가 애매하다"고 꼬집었다.
신3요건은 일본 또는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가 근저로부터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집단자위권에 대한 반대 여론이 다수인 상황에서 개헌이 아닌 내각의 결정을 통해 평화헌법의 근간조문인 헌법 9조를 무력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일본 정부는 이에 따라 여론 동향을 봐가면서 자민당의 공약사항인 헌법 9조 개정도 이번 기회에 추진할 태세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요건에 입각한 '한정적 행사'에 그칠 것임을 강조해왔지만 '2차대전 패전국'으로서 스스로 막아둔 전쟁 참여의 길을 패전 69년 만에 다시 열어 동북아 안보 판도를 바꿀 변수가 되는 길을 택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판국이다.
◆한중미 제각각 입장 발표=아베 정권의 거침없는 행보에 대한 한국과 중국,미국은 제각각의 입장을 냈다.중국은 경고,미국은 지지,한국은 기존 입장 되풀이다.
아베 총리는 각의 결정에 이어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시는 전쟁 참가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통절한 반성으로부터 전후 70년간 평화국가의 길을 걸어왔다"면서 "이번 각의 결정으로 전쟁에 휘말릴 우려는 더욱 없어질 것"이라며 "다시 전쟁을 하는 나라가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걸프전, 이라크전쟁에서의 전투에 참가하는 것과 같은 일은 앞으로도 결코 없다"면서 "일본 헌법이 허용하는 것은 자위 조치뿐이며 외국에 대한 방어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무력행사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의 각의 결정 직전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은) 신중하게 유관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면서 "지역의 평화·안정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반면,재정난으로 동북아에서 일본이 역할을 해 줄 것을 바라며 집단자위권 행사를 지지해온 미국은 지지입장을 나타냈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은 필요한 방식으로 자신들을 방어할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전후 평화헌법에 따른 방위안보정책의 중대한 변경으로 보고, 예의주시한다"는 대변인 성명을 내놓았다.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에서 "일본 정부는 향후 법제화 과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구체적 내용을 정함에 있어 지난 60여 년간 유지해 온 평화헌법의 기본정신을 견지하면서, 미일동맹의 틀 내에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특히,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함에 있어 한반도 안보와 우리의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우리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방위안보와 관련한 문제에 있어 과거사로부터 기인하는 의구심과 우려를 불식시키고, 주변국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역사수정주의를 버리고 올바른 행동을 보여야 할 이라고 촉구했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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