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수아레스, 잉글랜드에 2골 먹여 승리 낚아채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일주일에 한 번씩 그가 골을 넣는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대책 없이 두 골을 내준단 말인가. 어떤 대비책을 가지고 경기에 나갔나?"
잉글랜드 대표 팀의 로이 호지슨 감독(67)은 기자회견장에서 진땀을 흘렸다. 잉글랜드에 우루과이 골잡이 루이스 수아레스(27ㆍ리버풀)는 경기를 앞두고는 공포였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악몽이었다. 무릎이 아파 출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던 그의 두 골은 잉글랜드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우루과이는 16강을 향한 꿈을 되살렸다.
수아레스는 20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코린치앙스 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D조 2차전에서 전반 39분 선제골, 1-1로 맞선 후반 40분 결승골을 터뜨렸다. 그는 집요했고, 피 냄새를 맡은 맹수처럼 무자비했다. 결승골을 터뜨리는 장면에서는 동물적인 위치 포착능력과 잉글랜드 프리미어에서 서른한 골을 넣은 결정력이 빛났다.
축구종가의 자존심이 빳빳한 잉글랜드에도 수아레스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경기를 앞두고는 투지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호지슨 감독은 하루 전 기자회견에서 수아레스를 과거의 슈퍼스타 마라도나(아르헨티나)와 비교하며 "축구도 결국은 특별한 사람이 결정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예언이 되었다. 수아레스와 리버풀에서 함께 뛰는 잉글랜드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34ㆍ리버풀)는 "수아레스가 부상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면 좋겠다"고 했다. 언론은 태도가 굴욕적이라며 비난했지만 제라드의 판단은 정확했다.
수아레스는 제라드에게조차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허공에 뜬 공을 먼저 헤딩하기 위해 제라드와 쉴새없이 몸을 부딪혔다. 그 때마다 둘 중 하나는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수아레스의 결승골은 제라드의 헤딩이 빌미가 됐다. 우루과이 골키퍼 페르난도 무슬레(28ㆍ갈라타사라이)가 길게 찬 공은 제라드의 머리에 맞고 뒤로 흘러 수아레스의 발아래 떨어졌다. 수아레스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수아레스는 이 날 경기의 최우수선수(MOMㆍ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됐다. 검은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기자회견에 나온 그는 "내 생애 최고의 승부였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얼마나 꿈꿔왔는지 모른다"고 했다.
수아레스가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구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세 골을 기록해 우루과이를 4강으로 이끌었다. 한국과의 16강전에서는 결승골을 넣어 국내 팬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기량과 투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4년 전 가나와의 8강전에서 수아레스는 연장 후반이 끝날 무렵 우루과이 골문 안으로 날아가는 공을 손으로 쳐냈다. 골을 주는 대신 퇴장을 택한 것이다. 우루과이는 페널티킥을 막아내고 승부차기에서 이겨 준결승에 진출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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