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를 놓고 볼썽사나운 내부 분열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사회가 지난달 전산시스템 기종을 IBM에서 유닉스로 바꾸기로 확정한 것을 계기로 그동안 내연하던 갈등이 밖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상임감사위원은 이사회 결정에 불복해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했다. 반대 근거를 서술한 감사보고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다. 법원에 이사회 의결 효력정지 가처분신청도 내겠다고 했다. 반면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이사회 의결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에 검사팀을 파견해 이사회 의결의 내용과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KB금융지주 및 국민은행의 업무 전반에 대한 정밀검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행장이 이사회 의결을 사후에 뒤집으려고 하는 것도, 감독당국이 특정한 한 은행에 대해 총체적 정밀검사를 벌이겠다는 것도 은행 사상 초유의 일이다.
겉으로는 어느 전산시스템이 비용ㆍ효율ㆍ보안 등의 측면에서 더 우월한가 하는 기술적 문제가 쟁점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회장과 행장 간 불화와 주도권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금융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임 회장은 기획재정부 전신인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전형적인 모피아 출신이고, 이 행장은 리스크 관리 분야 전문가로 박근혜정부에 힘있는 배경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이런 둘 사이의 갈등이 '리딩뱅크'를 자처해온 국민은행의 의사결정절차와 지배구조를 흔들고 있다.
대형 민간은행이 전산시스템 교체 여부라는 기술적인 문제 하나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감독당국과 법원이라는 '외세'까지 동원하게 된 사태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 리더십의 결함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임 회장이나 이 행장이나 도긴개긴이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이후 도쿄지점 부당대출 및 비자금 조성 의혹, 1조원대의 금융거래 확인서 발급, 대량 개인정보 유출 등 여러 사고가 겹쳐 금감원의 검사를 받아왔다. 머지않아 이에 대한 징계조치를 한꺼번에 받게 될 전망이다. 전산시스템 관련 갈등은 이런 사고들이 괜히 일어난 게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업계 측 로비 여부는 물론 은행지주회사 제도에 근본적인 문제는 없는지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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